[르포] 중저준위방폐장 가보니 '안심'…고준위 방폐물처분은 갈길 멀어
동굴처분시설 방사선량 극히 낮고 표층처분시설 내진 설계도 강화
사용후핵연료 보관하는 국내 유일한 건식저장시설도 안전 '이상무'
(경주=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지난달 30일 경주시 문무대왕 수중릉을 끼고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언덕을 돌아 오르자 입구가 서로 인접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과 월성 원자력발전소(원전)가 나타났다.
기자가 찾은 현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건립돼 운영 중인 중저준위방폐장과 월성 원전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인 사일로·맥스터.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에 있어 국내에서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가 부지 내 저장, 중간 저장, 영구처분이다. 이들 모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방폐물) 관리 기본계획과 향후 제정될 특별법에 따라 추진될 예정이다.
현재 정부의 기본계획은 수립돼있으나 국회에서의 고준위 특별법 제정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날 현장 취재는 국내에서 하나뿐인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장과 고준위방폐물 건식저장 시설의 운영 안정성을 확인하고, 조속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체감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먼저 방문한 곳은 한국원자력환경공단(KORAD)이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방폐장.
경주 방폐장은 방사능을 활용하는 연구소나 병원, 산업체, 원전 등에서 나오는 작업복, 실험 도구, 보관 용기 등의 중저준위 방폐물을 처분하는 시설이다.
공단은 2014년 12월 중저준위 방폐물 1단계처분시설(동굴처분시설) 사용 승인을 취득해 이듬해인 2015년 8월 운영을 시작했다.
방폐장에 대한 간단한 현황 브리핑을 듣고 해수면 아래 130m에 위치한 동굴처분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폭 8m, 높이 7.5m에 이르는 동굴 입구를 지나 지하 95m 아래로 내려갔다.
버스에서 내려 방사선량계와 방호복, 면장갑, 덧신 등을 꼼꼼히 착용하고 동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굴 안은 양쪽으로 3갈래씩 나뉜 통로 끝에 방폐물이 실제로 처분되는 사일로 6기가 설치돼있었다.
중준위 폐기물로 채워진 200L(리터) 드럼 16개나 320L 드럼 9개의 콘크리트 처분 용기는 크레인을 통해 사일로 안에 차곡차곡 장입된다.
처분 용기 하나당 무게는 7t(톤)에 달하며 사일로 6기에서 총 10만드럼의 방폐물을 처분할 수 있다.
2010년부터 지난 2월까지 방폐장에 인수된 중저준위 방폐물은 3만1천550 드럼이다. 같은 기간 처분량은 2만7천98만 드럼, 저장(보관)량은 4천539 드럼이다.
조윤영 공단 중저준위운영본부 인수처분실장은 "사일로가 다 차면 상부와 그외 빈 곳을 쇄석(자갈)으로 채운 뒤 입구를 콘크리트로 영구 봉인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일로 바로 앞까지 접근해 방사선감시기를 확인했더니 자연방사선량 수준인 시간당 0.1∼0.2μSv(마이크로시버트) 수준이었다. 처분장을 빠져나오며 확인한 개인방사선량 수치는 아예 '0'이었다.
동굴처분시설을 나와 이동한 곳은 본부 상층부에 위치한 방폐물 표층처분시설 공사 현장.
일반적으로 중저준위 폐기물은 300년이 지나면 더는 방사성 물질을 방출하지 않는데, 이곳에서 처분될 방폐물은 중준위보다 방사능 준위가 낮은 저준위·극저준위 물질이다.
공단은 2017년 12월 중저준위 방폐물 2단계처분시설(표층처분시설) 부지 정지(整地·땅을 반반하고 고르게 만드는 작업) 공사를 완료하고, 지난해 7월에는 건설·운영 허가를 취득해 본공사에 착수했다.
이날 찾은 현장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해발고도 107m·6만7천490㎡의 높고 드넓은 부지에 처분고 20개, 지하로, 이동형 크레인, 배수계통 등이 들어선다.
이경환 공단 중저준위운영본부 시공관리팀장은 "방사선량에 따라 방폐물을 재분류해 저준위방폐물과 극저준위방폐물은 동굴처분시설이 아니라 표층처분시설로 옮겨져 처분될 것"이라며 "2018년 4월에 표층처분시설의 내진 성능을 0.2g(규모 6.5)에서 0.3g(규모 7.0)으로 재설계를 완료해 안전성을 더욱 강화했다"고 전했다.
고치환 공단 소통협력단장은 "공단은 2009년부터 14년간 방폐장 건설, 운영, 인허가, 안전성 평가·부지 조사 등의 노하우를 보유한 국내 유일의 방폐물 관리 전담 기관"이라며 "현재 국회에 상정돼 논의 중인 고준위방폐물 특별법에 공단이 관리 사업자로 지정될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저준위방폐장을 나온 뒤 방문한 곳은 방폐장 맞은편에 자리 잡은 월성 원전.
국가 보안시설 최고 등급인 '가'급 시설인 만큼 까다로운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 국내에 유일한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인 사일로·맥스터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저장매체 등 전자 기기류 반입은 엄격히 제한됐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에서 발전에 사용된 우라늄 연료로, 높은 열과 고준위 방사능을 가져 중·저준위 방폐물과는 다른 차원으로 특별 관리해야 한다.
원자로에서 나온 직후의 사용후핵연료는 물로 채워진 저장 수조에서 열과 방사선량이 낮아지도록 보관하는 습식 저장 방식을 거친다.
이후 5년 정도 지나면 방사선량이 낮아지면서 공기 대류에 의한 자연 냉각으로도 핵연료를 식히는 건식 저장이 가능해진다. 건식저장은 습식 저장보다 장기 관리, 운전관리 비용, 확장 용이성 등의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국내에서는 1992년부터 중수로형인 월성 원전 부지 내 지상에 국내에서 유일한 건식저장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1992년 4월부터 사용후핵연료 저장이 시작된 원통형 캐니스터(사일로) 300기는 2010년 16만2천다발로 용량이 모두 찼다.
이후 조밀건식저장모듈인 맥스터 7기에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되기 시작됐으며 지난해 3월 14일에 추가로 7기가 완공됐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사회에서 2031년께 습식 저장 수조가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고리원전(부산광역시 기장군 소재) 부지 내 지상에 국내 최초의 경수로형 건식저장시설 건설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환경단체들은 건식저장시설 건설에 반대한다. 방사선량이 여전히 높은 사용후핵연료를 지상에 보관하기 때문에 원전 주변 거주민들이 방사능에 피폭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월성원전 건식저장시설 주변의 방사선량(시간당 0.09μSv)은 국내 다른 지역에서 측정된 자연방사선량(시간당 0.05∼0.30μSv)과 차이가 없다.
실제 이날 40여분간 사일로·맥스터를 둘러본 뒤 측정한 개인방사선량 수치는 '0'이었다.
여기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도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은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고 있었지만, 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저장 용기나 핵연료 손상은 일절 없었다.
특히 월성원전 건식저장시설인 사일로·맥스터의 콘크리트 두께만 약 1m에 달한다고 한다.
전찬동 한수원 월성2발전소 연료부장은 "건식저장시설에 비행기가 와서 충돌하면 비행기는 완전히 파손되지만, 시설은 (외부 일부분에) 약간의 손상만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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