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하인' 대신 '하인'…애거사 크리스티 소설도 정치적 올바름
인종차별적 요소 등 부적절한 표현 수정·삭제해 출간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영국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이 현대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인종차별적 표현 등 부적절한 어휘를 다듬어 재출간됐다.
27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2020년부터 크리스티의 소설 출간을 맡은 영미권 최대 출판사 하퍼콜린스는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 시리즈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삭제하거나 수정한 디지털 개정판을 발표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특히 인종차별적인 표현들이 대거 삭제됐다.
일례로 '흑인 하인이' 침묵이 필요할 때 '소리 없이 웃었다'는 표현에서 '흑인'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소리 없이 웃었다'는 '고개를 끄덕였다'로 바뀌었다.
아시아인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담긴 용어인 '오리엔탈'은 다른 표현으로 대체됐고, '토착민'(native)은 '현지인'(local)으로 바뀌었다.
주인공이 영국을 떠나 만난 외국인들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부적절하거나 모욕적인 표현들도 대거 빠졌다.
크리스티의 데뷔작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에서 포와로가 한 등장인물을 향해 '물론 유대인'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삭제됐다.
같은 작품에서 한 여성을 '집시 종사 족의 젊은 여성'이라고 묘사한 부분은 그냥 '젊은 여성'으로 바뀌는 등 유랑민족 롬(Rom)인에 대한 경멸적 표현인 '집시'도 표현도 더는 찾아볼 수 없다.
1964년에 발표된 '카리브해의 미스터리'에서 서인도제도 호텔 직원의 치아에 대해 '아주 사랑스러운 흰색 치아'라고 칭찬한 표현도 삭제됐다.
특정 민족을 강조하는 표현도 사라졌는데, 같은 작품에서 이집트에서 수천년간 산 누비안 민족을 언급하며 '누비아인 뱃사람'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그냥 '뱃사람'으로 바뀌었다.
1979년에 발표된 '마플 양의 마지막 사건'에서 인도인 판사가 아침 식사를 달라고 요구하며 화를 내는 장면에서 이를 '인도인의 기질'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기질'로 대체됐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공격적인 표현도 수정됐다.
1937년에 발표된 '나일강의 죽음'에서 앨러튼 부인이 어린이들을 향해 '그들의 눈은 그저 역겹고 코도 그렇다'라고 한 문장은 삭제됐다.
문학 작품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수정해 개정판을 출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아동문학 거장 로알드 달의 동화 '찰리의 초콜릿 공장'과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는 현대인의 '정치적 올바름' 수준에 맞춰 '뚱뚱한'을 '거대한'이라는 표현으로 바꾸는 등 대대적인 수정 작업을 거쳤다.
이에 일각에서는 문학 작품에 대한 지나친 검열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이 동화들을 출간한 아동문학 출판사 퍼핀은 원작과 개정판 두 가지 버전을 모두 출판해 독자들에게 선택권을 줄 것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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