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아이폰까지…러시아, 제재 피해 '뒷구멍'으로 계속 수입
"러, 카자흐 등 옛 소련 국가와 중국·터키 통해 병행수입"
글로벌 기업 러시아 사업 철수 결정 무색…전쟁에 이용되기도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나이키 신발, 자라 옷부터 최신형 아이폰과 최신기술 반도체까지.
러시아가 서방의 강력한 경제 제재에도 아랑곳없이 자국에서 사업을 철수한 서방 기업의 물품을 '뒷문으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옛 소련 국가들이나 중국, 터키 등 '친러' 국가들을 통해 서방의 경제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이후 서방은 러시아에 전례 없는 제재를 가했고, 서방의 글로벌 기업들은 줄줄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이 실제 일반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외국 제품을 독점 수입권자가 아닌 제3자가 상표권자 허락 없이 수입하는 병행수입을 승인하면서다.
이 조치 덕분에 러시아 회사들은 상표권자 허가 없이 서방 기업의 제품을 제3국을 통해 들여와 자국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다.
애플은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지난해 2월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했지만, 러시아 소비자들은 러시아 온라인 쇼핑몰 '오존'에서 최신형 아이폰을 주문 후 2시간 안에 배송받을 수 있다.
이케아 가구나 미국산 장난감은 물론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같은 명품 제품들도 병행수입을 통해 꾸준히 러시아에서 유통되고 있다.
홍콩에 본사가 있는 '포치타 글로벌'과 같은 해외 구매대행 서비스도 나이키, 자라, H&M 등 서방 기업 제품을 러시아로 배달해준다. 포치타 글로벌에서 주문된 상품은 홍콩에 있는 창고를 거쳐 러시아로 배송된다.
해운 사기를 감시하는 '퍼블리컨'의 람 벤 치온 대표는 로이터통신에 "거의 모든 것들을 구매할 수 있고, 미래에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최신 기술의 반도체도 지하 무역을 통해 러시아로 수입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지난해 370만 달러 상당의 반도체를 러시아로 수출했는데, 이는 전쟁 전보다 300배 증가한 수준이다. 러시아는 중국에서도 마이크로칩과 같은 선진 기술을 수입하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가 획득한 반도체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더 타임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도시를 공격하는 데 쓰이는 크루즈 미사일 항법 장치 등에 최신 반도체가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방의 제재를 비웃는 러시아의 '뒷구멍'도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최근 러시아로 수출되는 물품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자국이 푸틴 대통령 정권의 조력자라는 인식을 받으면 서방의 경제 제재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더 타임스는 분석했다.
터키는 지난해 8월 7억3천800만 달러 상당의 제재 물품을 러시아로 수출했지만, 러시아와 대척점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탓에 러시아의 우회 수입로 역할을 줄여나가고 있다. 러시아 코메르산트 라디오에 따르면, 터키는 이달 러시아로 향하는 제재 물품 운송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러한 움직임을 겨냥한 듯 서방 국가가 러시아와 계속 거래하는 국가들에 "공개적이고 가혹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자세한 배경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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