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이번엔 전술핵 전진배치…핵전쟁 위협인가 심리전인가
벨라루스 7월 핵배치? "징후 없고 현실성 낮다" 평가
"우크라에 서방지원 끊을 정보작전…위험도 불변"
핵사용 가능성엔 "푸틴 궁지 몰리면 몰라" 일반적 우려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술핵무기의 동유럽 전진배치안을 통해 세계정세에 긴장을 더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을 억제하려는 심리전이라는 관측이 일단 힘을 얻는다. 그러나 러시아의 되풀이되는 핵무기 사용 위협이 실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선택지라는 우려도 뒤따른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국영 러시아24 인터뷰에서 동맹국인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오는 7월 1일까지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 저장고를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동유럽의 긴장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리는 도발인 만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그간 사례를 볼 때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발언도 실질적인 핵전쟁 위험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심리전일 가능성이 관측된다.
푸틴 대통령의 핵무기 언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이후 지속해서 선제 핵 타격 가능성, 핵무기 기반 시설 건설 등을 거론해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의 이런 엄포 배경에는 서방이 더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26일 전문가들의 진단을 소개했다.
서방 지도층과 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퍼트리는 것이 목적이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미 러시아가 자국 영토에 있는 핵무기로도 광범위한 거리의 표적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탄두 위치를 조금 이동시킨다고 해서 핵 위협이 많이 증가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우크라이나 전황을 추적해온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 핵전쟁 위험이 적은 '정보 작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ISW는 "푸틴 대통령이 서방의 핵 확전 공포를 이용하려고 한다"며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결의를 깨트리기 위해 실제 사용할 의도가 없이 반복적으로 핵무기 위협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국무부도 러시아의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를 주시하고 있지만 미국의 핵무기 전략을 변경해야 하거나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의 계획에 대해 "푸틴은 패배를 두려워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전술무기로 겁주는 것뿐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며 주장했다.
한편에서는 벨라루스에 러시아 전술핵무기를 배치하는 계획이 푸틴 대통령의 계획만큼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고 핵위협이 커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러시아 핵전력 전문가인 파벨 포드비그 유엔군축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의 핵 저장소가 매우 복잡한 만큼 7월 1일까지 벨라루스가 핵탄두를 옮겨 받을 준비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그는 벨라루스에 핵무기가 배치돼도 핵 위협 수준은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무기가 저장고 안에 있는 한 위협은 즉각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푸틴 대통령의 핵 배치 계획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은 러시아가 최소 7년 동안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핵무기 저장시설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실제 칼리닌그라드에 핵무기를 배치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방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면서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경고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극심한 손실을 보고 푸틴 정권이 궁지에 몰리면 핵무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일반적 관측이다.
우크라이나전 이후 러시아에 더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떠오른 중국은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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