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로 탄력 붙은 북미 전기차 시장…K-배터리 투자 가속 페달
LG엔솔, 美 애리조나 배터리공장 재추진…7조2천억 투자
국내 3사 수주 잔고 1천조…글로벌 시장 선점 경쟁 치열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K-배터리' 3사가 북미에서 생산 거점을 빠르게 늘리며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중국 경쟁업체들에 앞서 시장을 선점할 길이 열리자,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역대 최대 규모인 7조2천억원의 투자를 결정하며 먼저 가속 페달을 밟았다. 앞으로 국내 기업들이 속도를 더 끌어올릴 거란 전망이 나온다.
◇ LG엔솔, 투자액 당초보다 5.5조 증액…완성차 업계 '러브콜'
26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4일 이사회를 열어 그동안 보류했던 미 애리조나주 배터리 공장 건설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총 7조2천억원을 들여 27GWh(기가와트시) 규모 원통형 배터리 독자 생산 공장과 16GWh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3월 1조7천억원을 들여 11GWh 규모의 원통형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투자비 급등을 이유로 3개월 만에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바 있다.
약 9개월간의 숙고 끝에 LG에너지솔루션은 원래 계획보다 투자금액을 5조5천억원이나 더 투입하기로 했다.
이처럼 투자를 대폭 확대한 것은 테슬라 등 완성차 업체들의 '러브콜'이 잇따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버스계의 테슬라'로도 불리는 미국의 전기버스 업체 프로테라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공장 계획을 환영한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IRA 시행으로 전기차 보조금이 확대되고,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면서 전기차와 배터리 수요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또 IRA가 배터리 부품·소재에 대해 중국 업체의 미국 시장 진입을 제한하고 있는 점도 한국 기업에 호재다.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에도 LG에너지솔루션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건 안정적 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애리조나 공장에서 생산되는 배터리의 공급 대상도 대부분 확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배터리 시장의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판매자에게 유리한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완성차-배터리 업체 간 '합종연횡'…국내 3사 수주 1천조
글로벌 완성차 회사와 배터리 회사 간 '합종연횡'도 가속화하고 있다.
삼성SDI[006400]는 지난 8일(현지시간) 미 미시간주에서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공장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체계를 구축해온 GM이 삼성SDI와 손을 잡은 것은 공급처를 다변화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또 완성차 업체 포드는 튀르키예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을 위한 파트너로 그동안 함께한 SK온 대신 LG에너지솔루션을 선택했다. 포드는 또 IRA 규제를 우회해 CATL과 배터리 공장을 세운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역시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동시에 좀 더 싼 값에 배터리를 공급받으려는 완성차 업체의 전략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배터리 공급이 수요를 뒤따라가지 못하면서 배터리 업체가 협상의 주도권을 갖는 셀러스 마켓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대수는 1천195만대로 작년 대비 2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의 전기차 판매 예상치는 129만대로 작년보다 38% 증가할 전망이다.
또 국내 배터리 3사가 확보한 수주 물량도 1천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작년 말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수주 잔고는 385조원, 올해 1월 말 기준 SK온의 수주 잔고는 290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수주 잔고 규모를 공개한 적이 없다. 다만 업계에서는 삼성SDI를 포함한 3사의 수주 잔고가 1천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LG에너지솔루션의 대규모 투자를 계기로 미국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도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번 투자로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내 생산기지 7곳을 확보하게 됐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미국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데 이어 GM과도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SK온은 포드와 손잡고 미국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배터리 생산기지 3곳을 구축하고 있다. SK온은 또 2025년 이후 북미에서 현대차[005380]에 배터리를 공급할 계획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지난해에도 생산설비 증대에 거액을 투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6조2천909억원을 생산라인 신·증설에 사용했다. 삼성SDI는 지난해 배터리 생산력 증대를 위해 2조5천949억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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