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플 브뤼셀] 콧대높은 본고장서 당당히 '주류' 등극한 K-클래식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본선 진출자 매년 최다…올해도 26%가 한국인
'매니저 자처' 한국문화원장 "클래식이 한류 주도 독특 현상…7년새 관객 50% 급증"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최근 한국 언론의 관심이 많지 않은 '벨기에발(發)' 뉴스가 한국 주요 매체에 이례적으로 잇달아 등장했다.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본선에 한국인 진출자가 역대 최다 규모를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특히 이는 콧대 높은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 무대에서 확 바뀐 'K-클래식'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벨기에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한국 클래식계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눈여겨본 대표적인 나라다.
현지 영국, 독일 등 다른 서유럽 국가와 비교해 한인 규모 자체가 작은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진정한 '한류'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만난 김재환 주벨기에 한국문화원장은 "영화·가요 등 대중문화가 아닌 클래식이 한류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벨기에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세계 3대 음악 경연으로 꼽히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 클래식계 샛별들의 활약이 매년 거듭되고 있는 데다, 연령을 불문하고 클래식 문화 향유 기반이 탄탄한 현지 특성이 맞물린 결과로 그는 분석했다.
이런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2015년 이후 작년까지 매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본선 진출자 중 한국은 '최다 진출국'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이 대회는 매년 피아노·첼로·성악·바이올린 부문으로 돌아가며 개최되는 데, 부문을 불문하고 한국인들이 주류로 등극했다는 의미다.
성악 부문으로 열린 올해 콩쿠르에서도 전체 68명의 본선 진출자 중 한국인은 18명으로, 26%를 차지했다. 국적별 규모로 2, 3위인 프랑스(7명), 미국(6명)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많다.
이 콩쿠르의 중계를 담당하는 촬영 감독이 한국인들의 두드러진 활약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두 차례나 제작했을 정도다.
여기에 이른바 'K-클래식 매니저' 역할을 자처한 한국문화원의 저변 확대 노력도 한몫했다.
김 원장은 "'반짝스타'로 그치지 않으려면, 차세대 음악가들이 클래식 본고장에서 한 번이라도 더 연주할 기회를 마련하고, 이들의 포트폴리오를 채우는 '사후 관리'가 중요하다고 봤다"고 강조했다.
2015년부터 클래식 사업을 본격 시작한 문화원은 현지 전문기관과 협력을 처음부터 적극 공략했다.
국제 권위의 음악 고등교육기관으로 꼽히는 퀸엘리자베스 뮤직샤펠에서 교육받는 차세대 한국인 음악가들의 공연을 지원하고, 한 번에 1만5천여명의 관객이 동원되는 현지 공영방송 주최 '뮤직트로아 페스티벌'에서 거의 매년 한국인 음악가들이 유럽 관객들에게 소개된다.
벨기에 왕실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와는 공공기관으로는 유일하게 매년 업무협약(MOU)도 체결해 한국인 입상자들의 협연·독주회 등을 마련한다. 다국적 후원 기업이 대부분인 협력 기관 중 공공기관과 MOU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 밖에 이제 막 경력을 쌓기 시작한 한국인 신진 연주자들을 위해 벨기에 왕립음악원과의 한국 클래식 콘서트 개최나 현지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기획하고 있다.
문화원이 협력하거나 단독 주최한 현지 행사 관객 수는 2015년 1만여명에서 작년 기준 1만5천여명으로 50%가량 급증했다.
김 원장은 "대중문화 관련 업무를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원이 담당하는 것에 회의적"이라며 "어떻게 보면 산업의 영역이고, 이미 잘 나가는 분야라서, 공공기관이라면 기초예술, 클래식 같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문화 영역에 주목해야 한다"고 개인적인 견해를 밝혔다.
올해는 한-EU 수교 60주년을 맞아 '대형 클래식 이벤트'도 준비 중이라는 그는 "음악가 개개인에게는 유럽 관객과 접점을 넓힐 수 있는 동시에 유럽이 지닌 클래식 문화에 대한 향유 기반을 토대로 한국 문화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높일 기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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