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연정, 반정부 시위속 '네타냐후 방탄' 입법 마무리

입력 2023-03-23 18:10
이스라엘 연정, 반정부 시위속 '네타냐후 방탄' 입법 마무리

'총리 직무 부적합 결정 주체·사유 제한' 기본법 개정안 가결

"네타냐후를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만든 부끄럽운 법" 반발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이스라엘의 우파 연정이 야권 등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부패 혐의로 재판받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지키기 위한 입법을 마무리했다.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23일(현지시간) 밤샘 격론 끝에 총리 직무 부적합 결정을 제한하는 내용의 정부 조직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을 가결 처리했다.

이날 표결에는 전체 120명의 의원 중 61명이 찬성했고, 47명이 반대했다.

야권은 반복적으로 법안에 이의를 제기하고 16시간에 걸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펼쳤지만, 법안 처리를 막지 못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대표를 맡은 우파 여당 리쿠드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핵심은 총리의 직무 부적합성 심사와 결정의 주체와 사유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직무 부적합성 심사 사유는 정신적·육체적인 문제로만 한정하며, 부적합 결정은 총리 스스로 내리거나 각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또 총리가 각료 투표 결과를 거부할 경우, 의원 3분의 2(120명 중 80명 이상)가 찬성해야 가결된다.



법안 처리로 대법원의 총리 탄핵 판결 또는 검찰총장의 총리 직무 부적합 결정권이 사라졌다. 네타냐후 총리가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도 이를 이유로 그를 총리직에서 끌어내릴 수 없게 됐다.

야권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연정이 터무니없이 부패한 개인을 위한 법을 도둑처럼 처리했다"며 "유월절을 앞두고 물가는 치솟는데, 네타냐후는 자신만 돌본다는 것을 이스라엘 시민들은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베이테누 소속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의원은 "대법원에 사법 심사를 청구할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네타냐후의 왕국이 되는 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메라브 미카엘리 노동당 대표는 "순전히 네타냐후를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만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법"이라며 "우리는 두 번째 독립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입법은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킨 네타냐후 연정의 사법부 무력화 입법의 하나다.

이스라엘 우파 연정은 연성헌법인 기본법에 반하는 의회의 입법을 대법원이 사법심사를 통해 막지 못하도록 하고, 여당이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조종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야당과 법조계, 시민단체 등은 이를 '사법 쿠데타'로 규정하고 두 달 넘게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법안 심사가 진행된 전날 밤부터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을 포함한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법부 무력화 입법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연정의 사법 정비 입법에 반대하는 예비군들은 시오니즘 운동가이자 작가인 시어도어 헤르츨의 동상에 그가 남긴 명언 '의지만 있다면 동화가 아니다'를 패러디해 '이건 동화가 아니라 쿠데타다'라는 글귀를 내걸고 시위했다.

반정부 시위에 공감하는 예비군들의 복무 거부가 확산하면서, 일부 부대의 예비군 훈련 참여율은 50% 선까지 떨어졌다.

또 이스라엘의 군수산업 종사자 수백명은 하이파와 아크레를 잇는 도로를 봉쇄한 채 연좌시위를 벌였고, 텔아비브에서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시위에 동참한 부모들의 모습도 목격됐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