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밀월에도…퇴락한 美러스트벨트 방불, 썰렁한 접경도시들
WSJ "전면적 협력 막는 걸림돌들…중러 교역, 미중 교역의 4분의 1"
"대러 제재로 운송·금융 장애…양국간 폭력적 역사도 불신 남겨"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러시아방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이 양국의 전략적 협력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양국 관계에는 전면적 협력을 가로막는 여러 제약이 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중러 정상이 모스크바 회담에서 '한계 없는 파트너십'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양국 간의 유례없는 밀월의 이면에는 양측 관계의 걸림돌이 되는 경제·정치·역사적 방해 요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두 열강간 상호 번영과 긴밀한 파트너십으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지난 몇 년간 중러 접경 도시들에서 투자가 이뤄졌지만, 정작 썰렁한 길거리 모습이 중러간 밀월 이면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군데군데 움푹 패인 거리와 길 잃은 개들, 그리고 휑한 점포 등 러시아 접경 지역인 중국 헤이룽장성 헤이허의 거리 풍경은 오히려 퇴락한 미국의 러스트 벨트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고 WSJ는 묘사했다. 3층짜리 복합 쇼핑몰인 이 도시의 무역센터는 한때 모피나 가죽 코트와 신발 쇼핑에 나선 러시아인들로 북적거렷지만 지금은 1층의 절반 가게들만 문을 연 실정이다.
중러간 무역은 지난해 30% 이상 성장해 1천890억 달러(약 247조원)를 기록했다. 양국은 당초 2024년 2천억 달러 교역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그 같은 목표가 올해 안에 달성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중러 교역 규모는 미중간 교역 규모에 비하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의 교역 대상이 주로 미국·유럽·일본 등 서방 쪽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 경제가 상호 보완적인 구조이기는 하다. 러시아는 중국이 산업체에 동력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천연자원을 수출하고, 중국은 러시아인들이 원하는 소비재 상품을 주로 수출한다.
특히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의 러시아산 석유·가스 구매는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서방의 대러 제재로 인한 운송과 결제 문제 등이 중러 교역 확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많은 서방 해운 업체들은 러시아로의 화물 운송을 중단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러시아로의 해상 운송 요금이 급등했고, 운송 능력은 수요의 5분의 1에 그치고 있다.
서방 제재로 달러화와 유로화 결제가 어려진 점도 중러 교역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양국 기업들은 중국 위안화를 이용해 더 많은 상품을 거래하려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중앙은행이 러시아와 교역하는 자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전 개시 이후 대러 제재로 인한 물류 및 금융 장애로 중국 업체들의 약 60%가 영업을 중단했거나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보호무역주의도 또 다른 장애 요인으로 지목된다.
중국 세관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식용유와 동물사료 등에 사용되는 약 3억8천만 달러어치의 러시아산 콩을 수입했다. 이는 중국의 대미 콩 수입액 190억 달러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다.
중국 학자들은 러시아의 보호주의를 이 같은 현상의 한 원인으로 꼽는다.
러시아가 자국 내 가공산업 육성을 위해 2021년부터 콩 수출에 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최근엔 이를 50%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폭력적' 과거사 문제도 양측에 불신의 유산을 남겨놓았다.
헤이허에 있는 한 박물관은 수 세기에 걸친 러시아의 중국 침략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지난 1900년 러시아인들에 의해 수천 명의 중국인이 살해된 사건을 다루는 전시물도 있다.
박물관의 한 해설자는 "러시아와 중국 관계가 지금은 평화롭지만, 중국은 역사를 잊지 말고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WSJ는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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