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테러·납치후 8년만에 다시 열린 이집트 성지순례지 지금은

입력 2023-03-21 09:10
[르포] 테러·납치후 8년만에 다시 열린 이집트 성지순례지 지금은

여행경보 하향 후 한국인 성지순례 단체 여행 활기

테러 후 안전조치·외상치료 시설 강화…현지 관리들 "이제 안전"

관광업계 "보안 강화됐지만 항상 주의해야…안전사고 우려도"



(타바·세인트캐서린·누웨이바[이집트 남시나이州]=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이집트 시나이반도 동북쪽 이스라엘로 향하는 국경 검문소가 있는 남시나이주의 소도시 타바.

기자가 탄 차량이 국경 검문소 쪽으로 향하자 차단기가 설치된 첫 번째 보안 초소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경찰은 반사경을 이용해 차량 하부를 검사했고, 이어 폭발물 탐지견이 트렁크와 차량 내부에 폭발물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첫 번째 초소를 통과한 차량이 2014년 한국인 관광객 버스 테러 현장을 지나 100m가량을 이동하자 두 번째 초소가 나왔다.

경찰은 이번엔 탑승자의 신원과 목적지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 한참 동안의 확인 끝에야 차량은 국경 검문소로 향할 수 있었다.

2014년 2월 16일 한국인 성지순례 관광객 버스가 폭탄 테러를 당했던 이집트-이스라엘 국경 검문소의 강화된 보안 절차다.

테러 현장으로 기자 일행을 안내한 무함마드 하산 타바 시장은 "2014년 테러 이후 국경 검문소는 물론 관내 호텔 등 관광시설 이용자와 종사자들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등 보안을 대폭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경 검문소에 설치된 CCTV 영상은 샤름 엘셰이크의 남시나이주 정부는 물론, 수도 카이로의 이집트 내무부에서도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보안 강화와 함께 만일의 사태 발생 시 외상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검문소 인근에 새로운 병원도 지었다고 소개했다.

하산 시장은 "시나이반도 북부지역은 아직 위험 요소가 있지만, (성지순례 관광이 이뤄지는) 남부는 안전해졌다"며 "(남시나이주의 샤름 엘셰이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가 사고 없이 안전하게 치러진 것이 그 증거"라고 덧붙였다.

칼리드 파우다 남시나이 주지사도 "2014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한국인들이 가졌을 부정적인 감정도 전적으로 이해한다"며 "이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집트가 안전하다는 확신을 갖고 안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COP27 행사에 120개국 정부 대표와 6만5천여명의 방문객이 찾아 이집트(이집트의 치안 상황)를 칭찬했다"고 강조했다.

시나이반도를 찾는 이집트 성지순례 관광객들은 타바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세인트 캐서린에 있는 수도원과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 등을 둘러본다.

시나이반도에서 세인트 캐서린, 타바 검문소로 이어지는 성지순례 관광 경로에는 경찰과 군인들이 지키는 10여개의 경비 초소가 있다. 통신망이 없어 전화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는 일부 구간에서는 경찰이 관광 차량을 에스코트해주기도 한다.



성지순례 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한국인 선교사 A씨는 "단체 관광객이 이용하는 버스에는 관광청에서 파견한 무장 경호원이 동승하며, 일부 구간에서는 경찰이 에스코트해주기도 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찰이 관광객 차량의 목적지 및 이동시간 등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공유해 만일의 사태에 대응하는 등 꽤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 든다"면서도 "무장한 경호원을 관광객 버스에 탑승시킨다는 것은 아직 안전을 100%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방증인 만큼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원주민인 베두인(아랍계 유목민을 지칭)들이 중앙정부의 관광산업 정책에 호응하고 외국인 관광객에게 호의를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물리적인 보안 조치만큼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2012년 한국인 관광객과 가이드 등을 납치했다가 풀어준 범인들은 국제적 테러 조직이 아닌 베두인 무장세력이었다.

한 현지 교민은 "과거 사례를 보면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테러단체가 아니라 정부에 불만을 품은 베두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들이 정부에 불만을 품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하산 시장은 "2014년 테러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외국 관광객에 대한 현지인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점"이라며 "주민들은 이제 관광객의 안전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의 이집트 관광은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직전 전성기를 이뤘다. 당시 연간 방문객 수는 10만∼11만명 선이었고 한국-이집트간 직항 여객기도 있었다.

아랍의 봄 혁명의 여파와 2012년 관광객 납치사건, 2014년 한국인 관광객 버스 폭탄 테러 등으로 급격하게 줄었던 이집트 방문객 수는 이후 차츰 늘어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에는 3만명 선을 웃돌기도 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중에 뚝 끊겼던 한국인의 이집트 관광은 지난해 8월 한국 정부가 이집트에 대한 여행경보를 완화하고 방역 통제까지 풀리면서 직항 전세기 영업 등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는 모습이다.

과거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 납치와 테러 범죄가 있었던 시나이반도 성지순례지에도 1∼3월 하루 300∼400명 이상의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한국 대사관이 성지순례 여행지 안전 점검을 진행한 17∼18일 이틀 동안에도 시나이산 등 성지와 국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한국식당 등지에서 여러 대의 한국인 관광객 버스가 목격됐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성지순례 관광이 재개된 이후엔 테러나 납치 등 중대한 한국인 관광객 상대 범죄는 없었다.

하지만 왕복 10㎞에 달하는 시나이산 등반 등 과정에서 종종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게 현지 관광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지난 2월 낙타를 타고 시나이산을 오르던 한국인 관광객이 추락해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며 "다행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지는 않았지만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상 캄캄한 밤길에 등반을 하는데다 산악 등반에 특화하지 않은 낙타를 타는 것은 위험하고 동물권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강풍이 불거나 낙타 등에 탄 관광객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