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남일 아니다'…2024년까지 은행 차액결제 담보율 100% 추진
당장 '레고랜드사태 유예' 풀리면 8월부터 70→80% 상향
한은, 신용위험 줄이기…'하루뒤 차액결제'→'실시간 총액결제' 전환도 준비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박대한 민선희 기자 = 한국은행이 차액결제 실패를 대비해 은행으로부터 받아놓는 담보의 비율을 2024년 말까지 100%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실시간 총액결제(RTGS) 시스템 도입도 준비한다.
모두 은행의 지급·결제 관련 신용·유동성 위험을 줄이는 조치인데,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등 해외 은행들의 지급 불능 사태 등을 목격한 뒤 한은의 발걸음이 더 빨라지는 분위기다.
◇ 레고랜드 사태로 70%에 묶인 담보비율…BIS도 "신용위험 없애려면 100%" 권고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현재 70%인 은행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비율을 2024년 말 100%까지 단계적으로 높여갈 방침이다.
차액결제는 결제 시스템에 참여한 금융기관 사이에 이뤄지는 이체 등의 자금거래를 그때그때 건마다 따로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을 두고 거래를 모아 마감한 뒤 각 금융기관의 줄 돈, 받을 돈을 모두 계산해 차액만을 결제하는 방식이다.
현재 국내 은행 간 소액거래는 차액결제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거래 다음 날 오전 11시 한은이 은행 사이 차액을 정산해주고 결제를 마친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여러 건에 걸쳐 A 은행에서 B 은행으로 50만원이 이체됐고, B 은행에서 A 은행으로 100만원이 이체됐다면 당일 A 은행과 B 은행은 상대 은행으로부터 이체 건이 넘어올 때마다 우선 자기 돈으로 먼저 지급한다. 이후 다음 날 오전 11시 한은은 B 은행의 당좌예금 계좌에서 차액 50만원을 빼 A 은행에 넣어준다.
하지만 각 금융기관이 차액결제에 앞서 미리 지급하는 이 방식은 불가피하게 '신용 리스크(위험)'가 발생한다.
확률은 낮지만, 미국 SVB처럼 하루나 이틀 짧은 시간에 은행이 갑자기 파산에 이를 경우, 파산 은행을 상대로 거래한 은행들은 다음날 차액을 정산받을 수 없어 리스크가 연쇄적으로 전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은은 위험 회피 수단으로서 각 은행으로부터 차액결제 규모의 70%에 해당하는 국채·통화안정채권(통안채) 등을 담보로 받아두는데, 이게 바로 차액결제 이행용 담보증권이다.
하지만 현재 70%인 담보 비율은 신용 위험을 해소하기에 부족한 수준이다. 실제로 한 은행이 파산해 담보 외 30%의 미결제가 발생하면, 현행 손실분담제도에 따라 결제 시스템에 참여한 나머지 금융기관들이 우선 나눠 메워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지난 2012년 제정한 '금융시장 인프라에 관한 원칙(PFMI)'에서 차액결제 이행용 담보증권 비율을 100%로 권고한 만큼, 한은도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30% 수준에 불과했던 비율을 계속 높여왔다.
현행 70%도 당초 올해 2월까지 80%로 인상될 예정이었지만,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자금경색이 심해지자 한은은 은행 유동성 지원 차원에서 작년 10월 말 3개월, 올해 2월 말 3개월, 두 차례에 걸쳐 6개월 동안 인상을 미뤄줬다.
5월께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시 회의를 열어 추가 유예할지 80%로 올릴지 의결해야 한다. 만약 유예가 종료되면 우선 은행들은 8월까지 차액결제 이행용 담보증권 비율을 80%로 높이고, 한은 내부 목표대로라면 2024년까지 100%에 맞춰야 한다.
한은 관계자는 "금통위가 자금시장 상황, 개별 금융기관의 유동성 부담 등까지 살펴 결정할 것"이라며 "SVB 등이 불과 30여 시간 사이 파산한 사실과, 세계적으로 큰 우리나라의 온라인 결제 규모 등을 고려할 때 비율 인상을 계속 미루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신용위험 없는 '실시간 총액결제'가 대세…미국 7월 '페드나우' 출시
아울러 한은은 아예 신용 리스크가 없는 실시간 총액결제(RTGS:Real Time Gross Settlement) 시스템 도입도 서두르고 있다.
RTGS는 우리나라와 같은 이연 차액결제(DNS:Deferred Net Settlement) 방식과 달리, 수취인 계좌에 실시간으로 돈이 지급되는 순간 해당 건에 대한 은행 간 결제까지 완전히 마무리되는 형태다.
금융기관 사이 수많은 결제가 실시간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처리 정보량이 폭증하고 비효율적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최근 정보통신기술(ITC) 발달로 24시간 연중무휴 RTGS 시스템 구현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거래 건마다 바로 은행 간 정산이 끝나는 만큼, 이연 차액결제와 같은 신용 리스크가 전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RTGS의 대표적 사례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오는 7월 내놓을 '페드나우(FedNow)'다.
현재 연준은 하루 4차례 차액결제를 해주지만, 우리나라처럼 은행이 중앙은행 결제에 앞서 미리 실시간으로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서 자신 앞으로 송금된 돈을 받는 데 수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페드나우 등 RTGS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미국의 결제 시스템이 시간·신용 등의 측면에서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셈이다.
미국뿐 아니라 ECB(유럽중앙은행)도 조만간 RTGS 시스템을 개통할 예정이고, 2012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러시아, 브라질, 헝가리, 캐나다, 호주, 홍콩 등에서 중앙은행 또는 민간이 운영하는 RTGS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
한은도 현재 외부기관 등과 함께 RTGS 도입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우리도 적극적으로 RTGS 도입을 연구, 검토하고 있다"며 "RTGS는 신용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CBDC(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와의 연계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shk999@yna.co.kr, pdhis959@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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