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패싱' 마크롱 하야"…프랑스 연금개혁 반대시위 격화(종합)
전국 24개 도시 6만명 집회…일부 방화·도로 차단
경찰 강경진압…불법시위자 최소 310명 체포
마크롱에 '노란조끼 전국봉기' 이후 최대위기 관측
(파리·서울=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최인영 기자 = 프랑스 정부가 정년 연장을 골자로 추진하는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과격해졌다.
정부가 헌법 제49조3항을 사용, 연금 수급을 시작하는 은퇴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개정하는 방안에 대한 하원 투표를 건너뛰겠다고 밝히면서 안 그래도 불만이 팽배하던 민심에 기름을 끼얹은 모양새다.
17일(현지시간) BFM 방송 등에 따르면 파리, 마르세유, 낭트 등 24개 도시에서 전날 오후 예고도 없이 열린 시위에 6만명이 운집했다.
이들은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하원에서 연금 개혁 법안 표결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자발적으로 길거리로 나왔다.
1만명으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파리에서는 하원 맞은편에 있는 콩코르드 광장에서 애초 평화롭게 시위가 펼쳐지다가 오후 8시께 분위기가 바뀌었다.
광장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 복원 공사 현장에 누군가 불을 질렀고, 경찰은 돌을 던지는 등 폭력을 사용하는 시위대에 최루가스와 물대포로 대응했다.
일부 시위자들은 "마크롱 하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진압 경찰에 맞섰고 길가에 불을 지르거나 상점을 파손하기도 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시위가 열린 광장뿐만 아니라 쓰레기 수거업체 파업으로 파리 곳곳에 쌓여있는 쓰레기통과 주차된 차량에 불이 붙기도 했다.
서부 낭트에서 열린 시위에서는 "우리는 49.3(헌법 49조 3항에 따른 의회 따돌리기)을 원하지 않는다", "마티뇽(총리실)을 불태우자", "분노가 극에 달했다" 와 같은 구호가 울려 퍼졌다.
남부 마르세유에서는 길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건물에 페인트를 뿌리거나, 은행, 옷 가게, 전자제품 판매점 등을 약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이른 아침에는 약 200명의 시위대가 파리 순환도로의 교통을 차단했고, 보르도에서는 십 수명이 주요 기차역 선로에서 시위를 벌였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RTL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경찰이 전날 파리에서 258명을 포함해 프랑스 전역에서 310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다르마냉 장관은 디종에서 벌어진 시위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보른 총리, 장관들의 모형이 불에 탔고 공공건물들이 표적이 됐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주요 노조가 이번 주말과 다음 주 쟁의를 예고하고 있어 연금 개혁 반대 시위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분야 노동자들은 18∼19일이나 늦어도 20일에는 프랑스 최대 정유소 중 한 곳에서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고, 운수 노조와 교사 노조도 다음 주 파업하기로 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 같은 시위와 파업 움직임에 마크롱 대통령이 2018년 유류세 인상 방침에 반대하며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 이후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평가했다.
좌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 소속 다니엘레 오보노 의원은 "사회적 위기가 민주주의 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크롱이 '피로스의 승리'(손실이 커 실익이 없는 승전)를 거뒀다"며 "해악은 계속되고 위기는 급속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야당들은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 패싱'에 맞서 절차에 따라 불신임안을 제출하기 시작했다.
불신임안은 하원 577석의 과반인 289석 찬성으로 가결되는데 일단 부결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르네상스 등 집권당이 250석을 보유한 데다 61석을 지닌 중도우파 공화당도 불신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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