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꺼지지 않는 분노'…총파업 전국 마비·시위 격화
비행기·배·기차·지하철·택시·공공서비스·학교 '올스톱'
열차 정면충돌 참사 벌어진지 2주 지났지만 혼란 지속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그리스 역사상 최악의 열차 사고에 분노한 노동계가 총파업에 나서면서 전국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
AFP,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그리스 노동계를 대표하는 양대 노조인 ADEDY, GSEE가 16일(현지시간) 전국적으로 24시간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그리스로 오가는 항공편이 대부분 결항했다. 여객선 운항과 공공 서비스가 중단되고, 공립 학교가 문을 닫았다.
철도 노조가 지난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가 열차 운행이 중단된 상황에서 이날 지하철 노조와 택시 기사들이 파업에 동참하면서 도시 교통도 심각한 차질을 빚었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 중심부의 의회 근처 신태그마 광장에는 4만명 이상이 쏟아져나와 거리를 행진하며 정부 규탄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돌과 화염병을 던졌으며, 경찰은 최루탄과 섬광 수류탄으로 응대하며 시위가 격화됐다.
시위대는 퇴각하면서 신호등과 상점 유리창을 부수고, 쓰레기통에 불을 질렀다고 AFP는 전했다.
그리스 경찰은 아테네 시위 참가 인원을 2만5천명으로 추산했다.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와 파트라스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그리스에서 열차 정면충돌 사고가 벌어진 지 2주 이상이 흘렀지만, 그리스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이번 사고는 지난달 28일 그리스 중부에서 350명을 실은 여객 열차가 같은 선로를 달리던 화물 열차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57명에 이르는 사망자 대부분은 황금연휴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던 20대 대학생들이었다.
그리스 검찰은 여객 열차를 잘못된 선로로 보낸 라리사 역장을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교통부 장관은 사고 직후에 사임했다.
이번 사고가 만성적 인력 부족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자동화 시설 미비 등 예견된 참사였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적 분노가 커졌다.
정부 책임이 더 큰데도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참사의 원인을 라리사 역장에게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국민들은 더 크게 분노했다.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그리스 국민들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것을 넘어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시위대는 정부를 향해 "살인자들", "이 범죄는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시위대가 뿌린 전단에는 역장 모자를 쓴 미초타키스 총리의 모습과 함께 "나만 빼고 모두의 잘못"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뒤늦게 대국민 사과를 하고, 더 많은 철도 직원을 고용하는 것은 물론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철도 안전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택시 기사 테오도르스 도코스는 "정부가 오래전에 조처해야 했다. 사고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조처해서는 안 된다"며 "어떤 대책을 내놓든 국민들의 고통을 달래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정부는 애초 4월에 실시할 예정이었던 총선 일정을 5월로 연기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4%포인트 이상 추락하며 재선 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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