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대법원, 미국인 관광객 경찰관 살해 사건 파기환송
"경찰관인 줄 알고 범행했는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에서 경찰관을 살해한 혐의로 각각 징역 24년형과 22년형을 선고받은 미국인 관광객 2명이 법원에서 다시 재판받게 됐다.
이탈리아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법원은 15일(현지시간) 경찰관 살해 혐의로 기소된 미국인 핀네건 리 엘더(23)과 가브리엘 나탈레 호르스(22)에게 내려진 원심을 파기하고 재심을 명령했다고 공영방송 라이(RAI)가 보도했다.
최고법원은 엘더의 살인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지만, 일부 혐의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호르스가 살인을 공모했다는 증거 역시 충분하지 않다며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두 미국인은 친구 사이로, 2019년 여름방학을 맞아 이탈리아 로마로 관광을 와서 아스피린을 코카인인 것처럼 속여 판매한 마약 판매상의 가방을 훔쳐서 달아났다. 판매상은 경찰에 신고했다.
가방 절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마리오 체르치엘로 레가와 그의 동료 안드레아 바리알레는 판매상에게 가방 안에 들어있던 그의 휴대전화를 통해 두 미국인에게 연락하도록 했다.
사건 당시 10대였던 엘더와 호르스는 가방을 주는 대가로 돈을 돌려받기 위해 지정된 장소로 갔지만 거기에는 판매상 대신 두 명의 경찰관이 사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두 미국인은 두 경찰관과 만난 지 30초도 안 돼 범행을 저질렀다. 엘더가 체르치엘로 레가를 흉기로 11차례에 걸쳐 찌르고 달아났다. 체르치엘로 레가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참변을 당했다. 당시 이 사건은 이탈리아에서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둘은 1심에서 나란히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은 엘더에게 징역 24년형, 호르스에게 22년 형을 선고했다.
둘이 상대가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범행을 저질렀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엘더는 체르치엘로 레가를 살해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경찰관이 아니라 마약 판매상과 연관된 범죄 조직원이라고 생각해서 정당방위 차원에서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두 경찰관은 함정수사를 위해 사복을 입고 있었다. 당시 동행했던 다른 경찰관 바리알레는 법정에서 두 미국인에게 경찰 배지를 보여줬다고 증언했다.
엘더의 변호사는 "엘더는 두 명의 경찰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최고법원의 결정은 형량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호르스의 변호인은 "우리는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 마침내 우리의 주장을 들어준 사람이 생겼다. 이제 재판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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