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불길, 글로벌IB 크레디트스위스로 번져…세계금융 불안 증폭
"CS, 세계 은행들과 긴밀히 얽혀있어"
미국·유럽, 금융권 CS 관련 자금 규모 파악 나서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충격이 그간 경영난을 겪어온 스위스의 세계적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로 밀어닥치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중소은행인 SVB와 시그니처은행의 잇따른 붕괴 이후 미 당국이 모든 예금을 보호해주기로 하는 등 진화에 나서면서 다소 진정되는 듯 보였지만, 이들 은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훨씬 큰 크레디트스위스의 위기설로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 증시에서 크레디트스위스 주가는 장중 전장 대비 30.8%까지 빠졌다가 스위스 당국의 유동성 지원방침 발표 이후 24.24%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전날 연례 보고서를 통해 작년 회계 내부통제에서 '중대한 약점'을 발견했으며, 고객 자금 유출이 아직 계속되는 상태라고 발표해 시장의 불안을 키웠다.
이어 최대 주주인 사우디 국립은행이 추가 자금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현재로서 크레디트스위스와 SVB 상황이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SVB 붕괴 이후 불안감이 고조된 가운데 비슷한 시기에 크레디트스위스의 위기감이 부각하면서 주식 투매도 심해졌다고 미 CNN 방송은 설명했다.
지난해 시작된 각국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이 마르고 채권 금리가 상승하면서 은행 보유자산의 평가가치가 하락하는 등 이들 은행이 직면한 거시경제 환경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167년 역사의 크레디트스위스는 자산 규모가 약 5천억 달러(약 656조원), 전 세계 직원 수가 5만명에 이르는 이른바 '세계 9대 IB' 중 하나로 꼽힌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금융안정위원회(FSB)가 선정하는 '글로벌 시스템에 중요한 은행'(G-SIB) 30곳에도 포함된다.
따라서 크레디트스위스가 무너질 경우 실리콘밸리 기술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틈새 시장에서 영업해온 SVB 등 중소은행의 파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세계 경제에 미칠 충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컨설팅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앤드루 케닝엄 유럽경제 이코노미스트는 "크레디트스위스는 (SVB보다) 훨씬 더 세계적으로 연결돼있고, 스위스 이외에 미국 등에도 다수의 자회사가 있다"면서 "스위스만이 아닌 세계적 문제"라고 평가했다.
조지워싱턴대 로스쿨의 아서 윌머스 교수는 "대다수 사람이 (은행권 위기가) 몇몇 지역은행에 한정될 것으로 생각한 게 순진했다. 은행시스템 내 충격이 여전하기 때문"이라면서 "매우 큰 규모의 은행들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이날 시장 불안감을 진정시키기 위해 스위스 중앙은행으로부터 최대 500억 스위스프랑(약 70조3천억원) 상당의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또 복수의 익명 소식통들을 인용해 스위스 당국이 크레디트스위스와 은행 안정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면서, 스위스 사업 부문을 분사하거나 기업을 스위스의 경쟁 IB인 UBS그룹에 매각하는 방안, 스위스 정부의 크레디트스위스 지분 매입 등도 가능한 옵션이라고 전했다.
이날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의 FTSE MIB 지수는 4.61%, 스페인 마드리드 증시의 IBEX 35 지수는 4.37%,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지수는 3.83%,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는 3.58%,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지수는 3.27% 각각 급락했다.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0.87%)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0.70%)도 하락했다.
다우존스 마켓 데이터에 따르면 이날 유럽 은행주 시가총액이 750억 달러(약 98조원) 가까이 증발하는 등 위기 전염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유럽 내 다른 은행들도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설명했다.
또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은 각 은행들의 크레디트스위스와 관련된 자금 규모, 위험 노출액(익스포저)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
유럽 은행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재무 건전성을 강화해왔지만, 투자자들은 유럽 은행들이 크레디트스위스와 긴밀히 얽혀있는 만큼 일각에서는 '파산 도미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 중 프랑스 BNP파리바가 크레디트스위스와 파생상품 관련 거래를 하지 않기로 하는 등 주요 은행들이 서둘러 위기 확산 차단에 나섰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스위스 Syz 은행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샤를 앙리 몽샤우는 "과거 금융위기들을 봤을 때, 약한 금융기관에서 (위기가) 시작해 큰 기관에 영향을 끼치고 다른 모든 기관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 재무부도 미국 은행들에 대해 크레디트스위스와 관련된 자금 규모 검토를 주문했다.
미국 대형 은행들은 최근 몇개월간 크레디트스위스와 관련된 자금 규모를 관리해왔고, 현재로서는 이번 사안에 따른 여파가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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