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전액보호' 한국도 유사시 비상카드로…당국, 절차 점검
美, 전격 대응으로 SVB 뱅크런 확산 막아…예보, 美측에 관련절차 질의
韓도 IMF사태 때 시행 전례…예보 한도 조정·금융안정계정 도입도 박차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이지헌 임수정 기자 = 금융당국이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 등 경제에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금 전액보호' 조치를 대응 카드로 고려할 수 있도록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 점검에 나섰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서 미국 정부가 논란을 무릅쓰고 예금 전액보호 등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전격 시행한 게 '남의 일'이 아닌 상황이 올 수 있어서다.
15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SVB 파산 사태 이후 김주현 위원장 지시로 예금보험공사 등과 함께 뱅크런 발생 시 금융회사의 예금 전액을 정부가 지급 보장하는 방안에 관해 제도적 근거와 시행 절차를 살펴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SVB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유사한 일이 한국에서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유사시 정부가 예금 전액을 보호해야 할지에 관한 정책적 판단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SVB 사태를 계기로 우리도 미국과 유사한 대응책을 쓸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갖춰졌는지, 쓴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등을 컨틴전시 플랜 차원에서 점검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지난 12일(현지시간) SVB와 시그니처 은행에 예금자 보호한도를 넘는 예금도 전액 지급 보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예금자 보호 한도는 계좌당 25만달러(약 3억3천만원)까지 보호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등 기관들을 주로 상대하는 SVB의 경우 전체 예금의 거의 90%가 보험 한도를 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말 새 이뤄진 미 당국의 긴급 대책을 두고 적정성 논란이 일었지만, 일단 금융시장 불안 확산을 잠재우는 데는 큰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당국과 예보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외환위기 시기 국내에서 이미 유사 조처를 시행한 전례가 있었던 점에 주목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금융회사 부실 위험이 커지자 정부는 1997년 11월 19일부터 2000년 말까지 은행, 보험, 증권, 종합금융 등 업권별 모든 예금에 대해 원금 및 이자전액을 정부가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대책은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이며 1998년 7월 조기 종료됐다.
예금자보호법은 예금자보호 보험금의 한도를 1인당 국내총생산, 보호되는 예금 등의 규모를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른 대통령령은 현재 예금자 보험금 지급 한도를 5천만원으로 하고 있다.
한도가 대통령령으로 규정돼 있다 보니 비상 상황 시 정부가 행정입법으로 한도를 제한 없이 풀 수 있는 제도적 근거는 마련돼 있다고 당국은 보고 있다.
다만, 외환위기 이후 경제 규모와 금융 상황이 달라진 만큼 금융당국과 예보는 이번 미국 당국의 SVB 사태 대응 사례를 살펴보며 비상계획을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당국의 정책결정 배경과 제도적 근거를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FDIC 등에 질의서도 보낼 예정이다.
한편 금융당국과 예보는 이번 SVB 사태 대응과 별개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예금자보호한도, 목표 기금 규모, 예금보험료율 등 주요 개선과제를 검토하고 있다.
TF는 연구용역 결과와 연계해 올해 8월까지 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현재 국회엔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 등의 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금융시장 충격 등으로 일시적으로 자금난에 처한 금융회사에 예보가 선제적으로 유동성 지원을 하는 금융안정계정 도입안도 현재 관련 법안이 상정돼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예금 전액보호 이슈와 별개로 금융안정계정 등이 도입되면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예비적 수단이 추가되는 것이어서 위기 시 시장심리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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