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다음 차례는 부동산 대출 은행?…"시스템 위기 가능성은 낮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기억 소환, 전방위 확산 여부 촉각도
연준 금리인상으로 '팬데믹 거품' 꺼지는 과정서 문제 노출
SVB 붕괴에 부동산 대출 많은 은행들 주가 폭락…대형은행 뱅크런 위험 적어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미국 16위 은행 실리콘밸리은행(SVB)이 10일(현지시간) 갑작스럽게 무너지면서 금융권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할지 초미의 관심이 쏠린다.
이미 경기침체 확률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시장은 이번 사태에 벌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억을 소환하며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몇몇 은행들의 문제가 월스트리트를 넘어 전 세계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됐던 것과 비슷한 양상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는 게 일부 비관론자들의 견해다.
아직은 SVB 붕괴를 개별 은행의 특별한 사례로 취급하는 분위기에 힘이 실리지만, 적지 않은 다른 은행들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가 전파될 가능성을 무조건 배제하기는 어렵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몇몇 매체들은 SVB 위기의 근본 원인을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기간 팽창한 특정 자산들의 거품이 지난 1년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꺼지는 과정에서 찾고 있다.
1983년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서 설립된 SVB는 이름 그대로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 그중에서도 주로 신생 스타트업에 '돈줄' 역할을 해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기술기업들에 몰린 데 힘입어 SVB의 총예금은 2021년에만 무려 86% 급증했다고 WSJ은 전했다.
그러나 연준의 금리 인상이 기술기업들에 맨 먼저 타격을 가하면서 지난해부터 SVB로 유입되는 신규 자금줄이 거의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보유 현금을 까먹은 상당수 기술기업이 예금액을 줄였을 가능성도 크다.
SVB 직전에 가상화폐 거래은행 실버게이트가 먼저 무너진 것 역시 가상화폐 시장의 급등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예일대에서 금융위기 대응을 연구하는 스티븐 켈리는 WSJ에 "연준은 대놓고 금융 여건을 긴축하려고 했으며 은행이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이유는 없다"면서 "이는 가장 거품이 낀 시장에 연결된 은행들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SVB는 고객들의 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금리 인상의 충격파를 피하지 못했다. 이 은행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의 대부분이 미 국채여서 매입 가격보다 싸게 팔아야 했던 것이다.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은 급락(금리는 급등)한 상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금융회사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점이 다른 은행들에도 경계의 시선이 모이는 이유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미국의 은행업계는 보유 증권에서 총 6천억달러 이상의 미실현 손실을 낸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급하게 팔지 않고 만기까지 보유하면 실제 손실은 없지만, SVB처럼 예금 인출이 늘어나면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중도 매각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따라서 기술기업이나 가상화폐처럼 거품이 큰 분야에 많이 노출된 은행이 다음 타자가 될 것이란 관측이 높다.
시장은 부동산 대출에 많이 노출된 중소 규모 지역은행들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틀간 주가가 54% 폭락한 팩웨스트 뱅코프는 대출의 3분의 2가 부동산과 연관돼 있다고 WSJ은 보도했다.
역시 이틀간 29% 폭락한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최근 몇 년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사업에 집중하면서 대출을 급속도로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주가가 폭락한 것은 부동산과 모기지가 연준의 금리 인상 여파로 향후 몇 달간 부진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판단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일부 부실 은행이 정리되더라도 2008년처럼 시스템의 위기로 전면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우선 IT와 바이오 스타트업에 집중한 SVB처럼 특정 분야에 지나치게 쏠린 은행은 많지 않고, SVB처럼 초과 현금을 대부분 미 국채에만 투자해 보유한 은행은 별로 없다고 CNBC방송은 지적했다.
만약 국채 보유 비중이 높은 다른 은행이 있더라도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주택저당증권(MBS) 자체가 폭락했던 것과 달리 미 국채는 디폴트 위험이 거의 없어 만기 때까지 보유하면 손실을 보지 않는다.
또 금리에 민감하게 돈을 움직이는 기관투자자 비중이 높은 SVB와 달리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개인 소비자 비중이 높아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에 휘말릴 확률이 낮다. 금리 변동에 덜 민감한 개인 고객들은 머니마켓펀드(MMF) 등 다른 상품의 수익률이 더 높아졌다고 해서 빠르게 은행 예금을 빼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JP모건 애널리스트 비베크 주네자는 고객 노트를 통해 "대형 은행들은 훨씬 더 많은 유동성을 갖고 있고, 다양한 사업 모델로 다각화돼 있으며, 위기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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