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럽지 않아요" '월경권 보호' 행동 나선 케냐 여성 정치인
월경 후 교실서 쫓겨나 극단 선택한 여학생 사건 계기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케냐의 한 여성 상원의원이 월경을 죄악시하고 금기로 여기는 현지 문화에 저항하는 의미로 생리혈이 묻은 바지를 입고 의회에 등원했다가 출입을 거부당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케냐 현지의 '월경 빈곤' 문제 해결에 앞장서 온 글로리아 오워바 케냐 상원의원은 지난달 14일 흰색 상하의 정장 차림으로 수도 나이로비의 의회 의사당 건물에 출근했다.
오워바 의원이 건물에 들어가기 직전 청사 직원들이 그의 바지에 피가 묻은 것을 발견하고는 가려주고자 황급히 다가왔고, 오워바 의원도 그제야 자신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생리가 시작됐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했으나, 월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케냐 여성과 소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오워바 의원은 지난 2019년 학교에서 월경한 한 학생을 교사가 "더럽다"고 모욕하며 교실에서 내쫓자 이 학생이 모욕감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월경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곧바로 동료 의원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불편하다", "옷을 갈아입어라", "이런 일은 터부이자 개인적인 사안이다" 등 지적을 해왔고, 결국 몇 분 만에 회의장에서 퇴장당해야만 했다.
오워바 의원은 의사당에서 쫓겨난 것에 굴하지 않고 당일 옷차림 그대로 인근 학교에 찾아가 생리대를 무료로 나눠주는 등 공식활동을 이어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유엔에 따르면 실제 케냐를 비롯한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 여학생들이 생리대 등 위생용품 부족과 생리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등으로 생리 기간에 결석하거나 이것이 반복돼 자퇴에 이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는 종종 "나는 피를 흘릴 수 있어"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의정활동에 나서며 생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타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오워바 의원은 "어쩌다 생리로 인한 얼룩이 옷에 묻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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