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대학들, 여학생 빼고 개강…탈레반 여성 탄압 가속화
작년 말 '여학생 대학 수업 참여 금지' 발표 후 첫 신학기
여학생들 "꿈도 미래도 빼앗겨…제발 배울 수 있게 해달라"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아프가니스탄 대학들이 겨울방학을 마치고 개강을 맞이했지만 탈레반 정부의 여성교육 금지 조치로 여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8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여학생들의 대학교 수업 참여를 금지한다는 고등교육부 발표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대학들은 이달 신학기부터 여학생 없이 수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겨울방학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새 학기에 어떤 수업을 들을지, 졸업은 어떻게 준비할지 등을 고민하던 아프가니스탄 여대생들은 하루아침에 '공부할 자유'와 꿈꾸던 미래까지 박탈당해 깊이 절망하고 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한 4학년생은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까지 마칠 계획이었다. 일을 하면서 나라에 기여하고 싶었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됐다"며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카불 대학에서 연극학을 전공하는 2학년 학생은 "배울 수만 있다면 히잡을 쓰는 것도, 남녀 따로 수업을 듣는 것도 기꺼이 하겠다"며 "우리가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교육을 마칠 수 있게만 해달라"고 호소했다.
대학 생활을 시작도 못 해본 이들도 있다. 헤라트에 사는 아테파(19)는 컴퓨터공학을 공부해 개발자가 되려고 했지만 입학도 하기 전에 등교가 금지됐다.
아테파는 "친구들과 나는 대학 입학시험을 통과하려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꿈이 이뤄지기도 전에 끝나버렸다"고 슬퍼했다.
일부 여학생들은 현지 유엔 사무실 앞에서 등교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탈레반 정부가 이내 해산시켜 버렸다.
수도 카불의 카불대학 앞에서는 몇몇 여학생들이 길에 앉아 책을 읽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대학의 일부 남녀 학생들은 모두에게 등교가 허용될 때까지 남학생들도 수업을 거부해달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으나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남학생들도 여학생 등교 금지 조치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나 서슬 퍼런 탈레반 정부가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한 남자 대학생은 개강 후 학교 분위기가 장례식장 같다면서 "(여학생 등교 금지에) 모두 진심으로 속상해하고 있지만, 탈레반이 나를 체포할까 두려워서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파르완주에 사는 또 다른 남학생은 "여학생의 등교가 금지됐지만 우리 모두 금지당한 것 같다"면서 "남자들로만 나라를 건설할 수는 없다. 우리는 힘을 모아서 함께 일할 여성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탈레반은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직후에는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여러 유화 조치를 내세웠으나 갈수록 여성 차별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이제 얼굴까지 모두 가리는 의상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고 공원이나 놀이공원, 체육관, 공중목욕탕 출입을 할 수 없으며 남자 가족 없이는 혼자 여행도 할 수 없다.
탈레반은 중·고교 여학생들의 교육을 허용하지 않는 가운데 지난해 12월에는 이슬람 복장 규정 위반을 이유로 여성의 대학 교육도 금지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여성의 날(3월8일)을 앞둔 지난 6일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공적 생활영역에서 사라지는 등 세계 곳곳에서 여성 권리가 퇴보해 성평등이 실현되려면 30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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