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미국 콕 집어 공개 비난…금기 깬 이례적 수사
"미국 주도 서방, 中에 전면적 봉쇄·포위·탄압" 언급
정치적 의도…中 경기침체 원인 돌리기·미국에 견제구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간 '금기'를 깨고 미국을 직접 거론하고 비난해 관심을 끌고 있다.
7일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전날 시 주석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국가들이 우리(중국)에 대해 전면적인 봉쇄·포위·탄압을 시행해 우리 경제에 전례 없이 심각한 도전을 안겨줬다"고 공개 발언했다.
시 주석의 이 발언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 회의에서 나왔다.
중국에선 비공개는 말할 것도 없고, 공개 연설에서 최고 지도자가 말실수할 경우 이를 걸러 외부로 알리는 게 관례라는 점에서, 시 주석의 이런 직접 비난은 이례적이다.
신화사는 미국이 직접 거론된 시 주석의 정협 공개연설 중국어 원문을 그대로 보도했다.
다만 영어 번역문에선 "국가(중국)가 안팎의 심오하고 복잡한 변화에 직면한 만큼 싸울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썼다. 중국어 보도 내용과 비교할 때 미국과 봉쇄·포위·탄압 등의 단어가 빠졌다.
이를 두고 그동안 미국 대신 '특정 국가'라는 단어를 써온 시 주석이, 미국이라고 콕 집어 거명한 데는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정협 회의에 참석한 위원 상당수가 기업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시 주석은 최근 중국의 경기 침체가 철통 방역 '제로 코로나' 정책 탓이 아닌 미국 등이 주도하는 외부 압박 변수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기 위해 미국을 직접 비난했다는 지적이 있다.
아울러 적어도 미국과 '대거리'는 못하더라도 치고 빠지는 견제구 차원이라는 시각도 있다.
WSJ은 시 주석의 이번 공개 발언이야말로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그동안 자제해온 이례적인 일탈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시 주석이 냉전적 의미가 담긴 용어인 봉쇄라는 단어와 미국을 거론해 직접 비난함으로써 중국의 관리들이 그동안 주로 사용해온 민족주의적인 레토릭(수사)에 더 밀접하게 다가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WSJ은 미국이 인공지능(AI)·첨단반도체 등 핵심 기술에 대한 중국 배제 공급망을 만들고 대중 무역·금융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대만 문제를 두고 미중 갈등이 커지는 속에서 시 주석의 발언이 나온 점에 주목했다.
사실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 이후 미 행정부가 중국과의 충돌을 원치 않는다면서도 공산당 독재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데 부쩍 공을 들이고 있으며, 중국은 이를 '체제 부정'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가운데 미중 양국 간 거친 대응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전 미 국무부 고문인 제시카 천 와이스 코넬대 교수는 "거친 수사는 미중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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