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발언 자제한 中 '소수파 총리' 리커창의 마지막 업무보고
업무보고서 시진핑 14번 언급…한때 쓴소리·소신 행보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리커창 중국 총리가 5일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정부 업무보고를 마치면서 총리로서의 10년간 임무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후임 총리가 선출되기 전까지는 현직을 유지하지만, 당분간 총리로서 수행해야 할 업무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 총리는 이날 A4용지 32장 분량의 업무보고를 54분 동안 읽어 내려가면서 '시진핑'이라는 단어를 14번 입에 올렸다.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라거나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고 했다.
특히 업무보고 말미에서는 "우리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을 중심으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시진핑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지침으로 20차 당대회 정신을 전면적으로 관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때 시진핑 국가 주석의 경쟁자였고 중국 서열 2위로서 쓴소리와 소신 행보를 보이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의 장기 집권 기반이 완성된 상황에서 리 총리가 스스로 발언 수위를 조절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리 총리는 중국 공산당 내 주요 파벌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비슷한 연배 중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 그룹)계와 장쩌민계인 상하이방이 연합해 밀어준 시 주석에게 1인자 자리를 빼앗기고 2인자인 총리 자리를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총리 임명 직후 실세 총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집단지도체제가 약화하고 시진핑 1인 권력이 강화되면서 리 총리의 영향력도 함께 약화했다.
그의 마지막 업무보고는 과거 경쟁자였던 시진핑 찬양으로 가득했지만, 총리 재직 10년간 그는 절대 권력에 여러 차례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2020년 전인대 기자회견 발언은 3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리 총리는 당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 명의 월수입은 겨우 1천 위안(약 17만원)밖에 안 되며, 1천 위안으로는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말해 중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시 주석이 강조한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전국 화상회의를 열어 10만 명이 넘는 공직자들 앞에서 중국의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 심각하다는 충격 발언을 통해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리 총리가 '제로 코로나'를 주장하는 시 주석에 맞서며 중국 정가에서 권력 암투가 벌어질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당내 소수파로 실권이 거의 없는 리 총리가 시 주석에게 맞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지난해 당 대회를 통해 리 총리의 정치적 배경인 공청단은 사실상 몰락했고 '시진핑 1인 천하'로 마무리됐다.
리 총리의 후임은 리창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 당서기 출신의 리 상무위원은 지난해 10월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에 이어 두 번째로 입장하며 중국 공산당 서열 2위에 올랐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지난해 4∼5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상하이가 2개월 이상 봉쇄되면서 상무위원 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고 상무위원 자리에 올랐다.
리 상무위원은 시 주석의 저장성 근무 시절 핵심 부하 인맥인 '즈장신쥔'(之江新軍)의 일원으로, 시 주석의 핵심 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리 상무위원이 총리에 임명되더라도 실권이 거의 없는 총리에 머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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