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비상] ② 타워크레인 준법투쟁에 "1개층 올리는데 1∼2일 더 걸려"

입력 2023-03-05 09:01
[건설현장 비상] ② 타워크레인 준법투쟁에 "1개층 올리는데 1∼2일 더 걸려"

"바람 불어 운전 못한다", 초과 근무도 일제 거부…추가 공기 차질 우려

크레인 조종사 95%가 노조원, 대체 인력 투입도 어려워…정부 "태업 실태조사"

태업 막을 안전규정 개정 추진…주택업계도 협의체 꾸려 대응키로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김치연 기자 = 건설노조의 파업 후유증이 커진 가운데 건설현장은 추가 공기 지연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정부가 타워크레인 월례비 등 건설노조 불법 행위 근절 단속에 나서자 이에 반발한 타워크레인 노조가 이달부터 '준법투쟁'에 나서며 또다시 공사 차질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건설업계는 5월 이후 본격적인 하투(夏鬪)가 줄을 잇게 되면 건설현장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크레인 노조 준법투쟁 돌입…건설업계 "또 공사 차질 빚나 살얼음판"

5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현재 타워크레인 노조원의 준법투쟁은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상적인 수준인데도 바람이 불어 타워크레인 운전을 못하겠다고 하거나, 일부러 철근 등 자재를 천천히 들어올리는 방식으로 시간을 지체하는 것, 사전에 계약된 작업 외에 추가 자재 인양 등을 거부하고 52시간 외에 초과 근무는 금지하는 것 등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52시간 근무를 지킨다며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일하고, 5시 이후 들어오는 대체 기사에 대해서는 이름과 인적사항 등을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조합 집행부의 지침이 내려진 상태"라며 "특히 초과 근무가 중단되면서 타워크레인이 필요한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현장은 화물연대 등 건설노조 파업 후유증이 여전한데 또다시 공기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오히려 파업보다 준법투쟁을 앞세운 교묘한 태업이 더 골치 아프다는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타워크레인은 현장에 필요한 온갖 자재를 다 들어올려줘야 하는데 지금처럼 추가 근무 거부는 물론, 정해진 근무 시간내에서도 업무를 지연시키면 아파트 한개층 올리는데 걸리는 시간이 종전보다 1∼2일은 더 소요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누적되면 공기 지연이 불가피해진다"고 말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하루에 타워크레인으로 처리해야 하는 작업의 80%만 이뤄지면서 그만큼 투입되는 인력도 80%로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공정 차질은 물론 인력 관리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는 이번 주말부터는 준법투쟁으로 인한 공정 차질이 현실화할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5월 이후 화물연대와 철도·레미콘, 노동계의 하투가 본격화할 경우 공사 차질로 인한 후유증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등으로 전국 건설현장 곳곳에서 공정 차질이 벌어지고 있는데, 추가로 공사가 지연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 "태업하면 대체 조종사 투입"…업계 "95%가 노조원, 대체 인력 부족"

국토교통부는 타워크레인 노조의 준법투쟁과 관련해 고의적인 태업을 한 조종사에 대해서도 면허를 정지하고, 대체 조종사를 투입하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원희룡 장관은 "태업을 몽니와 압박 수단으로 삼는다면 돌아갈 것은 면허 정지, 그리고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는 결과밖에 없을 것"이라며 타워크레인 노조에 대해 강경 대응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현실적으로 노조원들을 대신할 충분한 대체 조종사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전국의 5천∼6천개 타워크레인은 노조원만 탈 수 있고, 이들 조종사의 90∼95%가량은 모두 민노총 또는 한노총 소속 노조원이라는 것이다.

국토부는 당장 대한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등과 함께 타워크레인 노조의 태업 등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대체 조종 인력 확보 가능성을 타진하고, 고의적인 태업 사례에 대해서는 면허 정지 등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타워크레인 노조가 안전기준 위반 등을 이유로 악의적으로 건설사를 고소하거나 고의적 태업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안전 규정도 개정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우선 하부 근로자 출입 통제, 신호수 배치, 적재하중 초과 중량물 인양 등 타워크레인 안전기준과 관련한 행정해석을 마련해 지난달 말 공지했다.

예를 들어 크레인을 사용한 인양구간 하부에서 근로자가 작업하거나 출입해 인양중인 화물이 근로자의 머리 위로 통과하는 건 위법하지만, 인양구간이 아닌 단순히 봉대 회전 반경 아래에 근로자가 있는 것 만으로는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작업중인 타워크레인에 신호수를 두지 않는 것은 위법이나, 작업이 중단된 경우에는 신호수를 두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했다.

한국주택협회는 이달 17일 10대 건설사를 포함한 19개 회원 건설사를 주축으로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고 건설노조의 불법 행위 등에 대해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건설업계는 건설노조와의 대치가 장기화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건설업계와 소비자가 떠안게 된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강성주 노동정책팀장은 "타워크레인 기사 자격증 보유자가 전국에 2만5천명으로, (노조 독점이 아닌) 공정한 경쟁 체제로만 간다면 대체 조종사가 부족하지 않다"며 "15층 미만은 조종사 없이 가동되는 무인타워 설치를 활성화하는 등 현실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주택협회 이동주 산업본부장은 "지금 상태로는 건설사가 사업비 예산을 세울 때 노조 불법행위로 인한 비용과 공기지연을 사전에 감안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분양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선의의 소비자만 피해를 보게 된다"며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되 공기 지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확고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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