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찰스 3세 국왕, EU 집행위원장 면담에 정치개입 논란
북아일랜드 관련 브렉시트 새 합의 '윈저 프레임워크' 발표 직후
총리실 "의례적인 외국 정상 면담"…왕실 "외국 정상 만남, 정부 권고"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찰스3세 국왕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만난 뒤 정치개입 논란에 휩싸였다.
찰스 3세는 27일(현지시간) 오후 윈저성에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차를 함께 마셨다.
이렇게만 보면 국왕과 영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간의 평범한 만남으로 보인다.
문제는 직전에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기자회견을 하고 북아일랜드에 관한 브렉시트 후속 협상이 타결됐다고 발표한 점이다.
'윈저 프레임워크'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합의는 브렉시트 이후 북아일랜드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이다.
영국과 EU간 합의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았지만 진짜 과제는 북아일랜드 연방주의자와 영국 보수당 브렉시트 강경파를 설득하는 일이다.
이런 민감한 발표를 한 직후에 국왕이 당사자를 만나면서 왕정을 지지하는 연방주의자들에게 마치 이 합의가 국왕의 승인을 받은 것처럼 보이게 됐다.
국왕은 왕세자 시절 정치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이력이 있다.
또, 25일에 만나려다가 불발된 것이 알려지면서 이미 한 차례 시끄러웠던 상황이다.
국왕 면담 전부터 이번 합의에는 왕실 느낌이 명확했다고 가디언지가 전했다.
기자회견장은 찰스 3세가 커밀라 왕비와 결혼한 윈저 시청 대강당이었다. 이 곳엔 옛 국왕들의 거대한 초상화들이 걸려있다.
정부에선 그런 의미가 담긴 만남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BBC에 따르면 총리실 대변인은 국왕과 외국 정상의 의례적 만남이며, 근본적으로 국왕의 결정이라고 답했다.
윈저에서 협상을 한 이유에 관해선 "이런 종류 회담이 중요한 장소에서 이뤄지곤 한다"라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반면 왕실 대변인은 "왕은 영국을 방문하는 어떤 외국 정상도 기꺼이 만나며, 이는 정부의 권고"라고 말하며 다소 다른 어조를 내비쳤다.
왕실 관계자들은 국왕의 개입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며, 헌법적 의무를 늘 명심한다고 말했다고 텔레그래프지가 전했다.
EU도 찰스 3세 면담과 북아일랜드 협약 합의는 별개 사안이라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트위터에 국왕과 우크라이나와 기후변화 등 공동의 과제에 관해 논의했다고 적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면담이 EU측 요청이었다고 말했다고 더 타임스가 전했다.
반면 영국 정치권에선 국왕이 정치에 연루됐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알린 포스터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 대표는 트위터에 "총리실이 이렇게 논란이 큰 협상을 마무리하는 데 국왕에게 관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국왕이 아니라 정부 결정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1 야당인 노동당의 크리스 브라이언트 의원도 "정부의 끔찍한 실수다. 국왕을 절대 정치 분쟁에 끌어들이면 안된다"고 말했다.
제이컵 리스-모그 보수당의 브렉시트 강경파 의원도 "현명하지 않다"며 "국왕은 의회에서 합의가 됐을 때 이를 승인하는 것이지 논의 과정에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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