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태평양 주도권 강화 진용 갖춰…영향력 다툼 본격화?
美, 솔로몬 대사관 재개설…中, 권한 강화 '정부 특사' 임명
대만·남중국해 이어 태평양 제도도 미중 전략경쟁 무대로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미국이 최근 솔로몬 제도에 대사관을 재개설한 데 이어 중국이 이전보다 권한을 훨씬 강화한 태평양 제도 총괄 특사를 임명함으로써 미중 양국의 태평양 제도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로 압박하는 데 대해 중국이 지지 않겠다며 맞선 형국으로, 대만과 남중국해에 이어 태평양 제도가 미중 양국의 갈등과 대립의 장(場)이 될 것을 예고한다는 것이다.
중화권 매체들에 따르면 최근 중국 외교부는 첸보 전 피지 주재 대사가 '중국 정부 태평양도서국(PIF) 사무 특사'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주목할 대목은 해당 직위가 기존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됐다는 점이다.
기존 'PIF 사무 특사'는 호주와 뉴질랜드 이외에 태평양 제도를 총괄하는 '외교부 특사'였으나, 이번에 '중국 정부 특사'로 격상했다.
중국 인민대의 왕이웨이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이로써 첸보 특사가 중국 국무원 산하 여러 부처 및 부서와의 조정자로서 PIF 관련 문제에 대한 해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짚었다.
다시 말해 첸보 특사가 중국 정부 내에서 외교 관련 문제만이 아닌 안보·군사·경제·정치 방면의 문제도 함께 다룰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 외교의 실무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도 기존 PIF 특사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일 미중 양국이 태평양에서 영향력 다툼을 하는 가운데 첸 특사가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SCMP는 이어 중국이 과거에는 태평양 제도의 국가들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뒀으나, 이제는 미국과의 영향력 경쟁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짚었다.
최근 몇 년 새 중국의 회유로 솔로몬 제도 등이 이탈하면서, 태평양 제도 내 대만과의 수교국은 마셜제도·나우루·팔라우·투발루 등 4개국에 불과하다.
사실 미중 양국의 '태평양 공방'은 지난해부터 막이 올랐다.
작년 4월 중국이 솔로몬제도와 안보 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당시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피지에서 10개 도서국과 외교장관 회의를 개최하는 등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그러자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해 9월 태평양 제도의 12개국 지도자들을 워싱턴으로 초청해 백악관에서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중국이 노골적인 구애의 손길을 뻗쳐 미국의 영향력이 유실될 것을 우려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태평양 제도 국가들은 과거 미국의 통치를 받아 대미 관계가 나쁘지 않았으나, 미국의 방치 속에 중국의 '돈 공세'로 솔로몬 제도 등이 미국에 등을 돌릴 기색이 역력했다.
미 행정부는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에서 외교·안보 관계를 강화하고 8억1천만 달러(약 1조1천600억 원) 상당의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지구 온난화로 침수 위기에 처한 나라들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태평양 제도 내 미국 대사관을 기존 6개에서 9개로 늘리기로 했으며, 지난 1일 솔로몬제도 수도인 호니아라에 대사관을 30년 만에 재개설했다.
미국은 냉전 시절 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인 솔로몬 제도를 중시했으나, 탈냉전 이후인 1993년 대사관을 폐쇄한 바 있다.
그러나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대만과 남중국해에 이어 태평양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로 중국을 압박하면서 태평양 제도가 미중 양국의 전략적 경제·안보 대결의 무대로 부각되고 있다.
kji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