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 1년] ⑦ '거대한 난민촌' 베를린 옛공항 르포…불안과 기대 공존
독일 정착 '길목', 매일 300명씩 도착…2천500명 수용시설 만원 되자 활주로에 대형천막
체크인 거쳐 입소…'다닥다닥 비좁은' 임시거처서 새로운 삶의 터전 찾는 사람들
50여마리 반려동물도 함께 생활, 한달이상 장기 숙박자들도…"전쟁 끝나기만을"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비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놓인 2층 침대와 끝이 안 보이는 공용화장실과 샤워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외곽, 여의도 1.5배 규모 부지에 위치한 옛 테겔공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 만에 거대한 우크라이나 난민촌으로 변해 있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직접 찾아간 테겔공항 임시난민수용시설은 철제펜스로 둘러싸여 난민 외에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 이에 기자는 베를린 중앙역에서 난민들과 함께 셔틀버스를 타고 임시난민수용시설에 접근할 수 있었다.
밀려드는 난민들로 5개 터미널 중 1곳에 둥지를 튼 2천500명 규모의 수용시설이 거의 만원이 되자 베를린시는 활주로에 대형 천막을 지어 3천200명 규모 수용여력을 추가로 확보했다.
이곳에는 전쟁이 발발한 지 거의 1년이 지난 최근까지 하루 300명에 가까운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새로 둥지를 틀고 있다. 초반에 하루 수천명씩 밀려들던 데에 비하면 숫자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상당하다.
1948∼1949년 러시아의 서베를린 봉쇄 당시 연합군의 공중보급통로 역할을 했던 테겔 공항은 이제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독일 등 유럽에 정착하는 가교가 되고 있다.
피난민들은 육로로 폴란드 국경을 넘어 수도 바르샤바에서 기차나 고속버스로 베를린 중앙역이나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 셔틀버스를 타고 난민촌에 도착한다.
이들은 마치 항공기 탑승을 위해 체크인하는 것처럼 여권 확인, 목표지, 지병 유무 등을 묻는 설문지 작성과 지문 입력 등의 절차를 거쳐 침대를 배정받고 입소한다.
가로세로 열 발자국 남짓의 좁은 방에 놓인 2층 침대 5개 중 한 곳이 피곤함에 지친 몸을 누일 공간이다. 침대와 침대 사이는 얇은 천으로만 가려져 있다. 서로 속삭여도 소리가 다 들리고, 항상 누군가 기침하는 소리에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직접 둘러본 방안 곳곳에는 옷가지와 가재도구를 담은 짐 더미가 놓여있었고, 침대 사이 빨랫줄에 빨래를 말리는 모습도 엿보였다.
이곳에 1주일여 머물 예정인 안나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다 보니 항상 불안하다"면서 "사적공간을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키이우 외곽지역에서 떠나온 그는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여전히 머물 곳을 찾고 있다. 그는 그런데도 독일에서 피난처를 구한 데 대해 고맙다고 강조했다.
숙박시설과 공용 화장실로 빼곡한 터미널 양 끝에는 하루 세끼의 식사가 제공되는 식당이 있다. 이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점심을 먹던 안젤리네(16)는 베를린의 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는 게 꿈이라고 털어놨다.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피난 온 그는 이곳 생활이 한달 째다. 그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이 구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
옛 터미널 맞은편 활주로에는 또 다른 피난민들에게 임시 안식처가 돼줄 대형천막이 완성되고 있었다.
각각 190개의 2층 침대가 들어가 모두 3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천막 2개 동마다 1개 휴게용 천막과 1개 위생 천막이 마련됐다. 위생 천막에는 공용화장실과 공용샤워 시설, 세탁기 등이 설치됐다. 휴게용 천막에서는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게임 등을 할 수 있다. 어린이용 놀이 천막도 있다.
테켈 임시난민수용시설에서는 50여마리의 반려동물도 함께 생활한다. 32명의 의료진이 24시간 의료서비스도 제공한다.
취재를 마치고 베를린 중앙역으로 돌아오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만난 마르게리타(29)는 "겨울이 닥쳤는데 너무 춥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엄마, 언니 부부, 조카들과 피난을 오게 됐다"고 말했다.
전날 폴란드에서 도착한 뒤 하루만에 체크아웃을 하고, 지인이 있는 헤센주로 향하던 이들은 잘 잤느냐는 질문에 "하루 정도면 충분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헤센주로 가서 독일어를 못하니까 청소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독일로 피난온 우크라이나 피난민은 110만명에 달한다. 이들 중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간 13만9천명을 제외하면 순유입된 우크라이나 피난민은 96만2천명이다. 2014∼2016년 난민 위기 당시 순유입된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출신 난민 83만4천명보다 많다. 수도 베를린내 우크라이나 인구는 전체인구중 1.5%를 차지해 16개주 중 가장 많다.
독일에 정착하는 우크라이나 피난민은 옛 실업수당에 해당하는 시민수당이 지급받게 되며 취업센터로부터 주거비 등도 지원받을 수 있다.
적십자 소속인 레기나 크나이딩 테겔공항 임시난민수용시설 대변인은 "통상적으로 임시시설은 하루나 이틀가량 지내는 용도지만, 베를린에서는 난민들을 위한 숙소가 모두 동나 임시시설에 한 달 이상 장기간 머무는 이들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을 자기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한 자원봉사자들이 많았는데, 이들도 별도의 공간이 있기보다는 자기 집 거실 소파 등에 임시거처를 만든 경우가 많아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다시 임시시설로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아무도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테겔공항 임시피난민수용시설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 직원이 1천명 가까이 일하고, 이제 우크라이나 난민이 도착하면 정착을 돕는 체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면서도 "이곳에 도착하는 피난민들은 갈수록 가난하고 비참한 처지인 경우가 많다. 모두 언젠가는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는데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한탄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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