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 1년] ① 예상 깬 장기전…출구도, 끝도 안 보인다

입력 2023-02-20 07:11
수정 2023-02-20 13:31
[우크라전쟁 1년] ① 예상 깬 장기전…출구도, 끝도 안 보인다

우크라, 연이은 점령지 수복에…전열 재정비한 러, 재반격 '팽팽한 균형'

양국군 전사자 수십만명에 민간인 사상자 2만명…우크라 경제타격도 막심

봄철 대격전 긴장감 최고조…서방 대 反서방 대리전 속 2~3년 장기전 우려도

[※편집자 주 = 오는 24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됩니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대의 무력 분쟁인 이 전쟁은 엄청난 인명 피해와 참혹한 파괴, 인도주의적 재난을 야기했습니다.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재로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다가오는 봄에 '대결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은 국제정치와 안보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았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이 초래한 침체에서 막 벗어나려던 세계 경제에도 다시금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연합뉴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맞아 이 전쟁의 진행 경과와 의미, 전망 등을 짚어 보는 기사와 르포, 인터뷰 등 11건을 일괄 송고합니다.]





(이스탄불=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지난해 2월 24일 새벽,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를 해방하겠다며 '특별 군사 작전'을 전격 개시했다.

20만 명에 가까운 병력을 동원한 전면 침공에 우크라이나가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회의적 시선이 대부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같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결사 항전에 나선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지원에 힘입어 수도 키이우를 지킨 것은 물론 개전 후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대거 탈환하면서 전세를 역전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겨우내 전열을 재정비한 러시아가 봄철 대공세를 준비하면서 전쟁이 또다시 결정적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양국 군 사상자가 수십만 명에, 민간인 사상자가 2만 명에 육박하는 인도적 재앙은 전쟁이 해를 넘겨 장기화하면서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양국의 팽팽한 대치 속에 평화협상론도 힘을 얻지 못하면서 전쟁의 끝이 어디일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서방 대 반(反)서방 진영 간 대리전 양상도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 엎치락뒤치락 전황…우크라 반격에 러도 재반격

이번 전쟁은 지금까지 크게 우크라이나가 키이우를 지켜낸 지난해 2~3월 1단계, 러시아가 점령지를 꾸준히 확대한 4~7월 2단계,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반격에 나선 9~11월 3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개전초 러시아군은 압도적인 기갑 전력을 앞세워 우크라이나 전역을 빠르게 돌파했고 순식간에 키이우 외곽에 도달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은 엄호나 보호 조치 없이 이동하는 러시아군 전차와 장갑차를 공격용 드론과 재블린 미사일로 격파했고, 제대로 보급조차 준비하지 않은 러시아군은 금세 공세의 한계에 직면하게 됐다.

결국 러시아군은 막대한 피해를 낸 채 한 달 만에 키이우에서 후퇴했고, 4월부터는 친러시아 주민이 많은 동부 돈바스와 2014년 점령한 남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점령지를 구축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그리고 무차별 포격으로 조금씩 전진한 끝에 5월에는 동남부 마리우폴을 함락함으로써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선을 연결하는 점령지를 완성했고, 7월에는 루한스크주까지 완전히 점령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서방으로부터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을 비롯한 장거리 무기를 지원받는 등 착실히 전력을 모았고, 9월 들어 동북부 하르키우주를 대부분 수복하며 일거에 전황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수세에 몰린 러시아는 9월 말 점령지 합병을 선언하고 핵 위협을 가하는 한편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예비군 30만 명을 징집하는 부분 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여세를 몰아 11월에는 남부 요충지 헤르손까지 수복하며 키이우 수성 후 최대 전과를 거뒀다.

이때만 해도 우크라이나가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이 많았지만, 군사 작전이 어려워지는 겨울철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우크라이나의 발목을 잡았다.

또한 10월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의 에너지 및 운송 기반시설을 집중 공습한 결과 우크라이나의 작전 역량이 약화했고, 이 틈을 탄 러시아는 동원병을 본격적으로 투입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공세로 재전환했다.



◇ 무차별 포격·공습에 민간인 피해 급증…유럽 최대 난민사태도

양국 간 전면전이 1년간 계속되면서 양국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전쟁 초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키이우 북쪽 외곽 부차에서는 민간인 시신 수백 구가 발견돼 전 세계가 경악했다. 이어 동북부 이지움, 러시아의 남부 점령지 마리우폴 등에서도 각각 수백 구가 넘는 규모의 매장지가 발견됐다.

러시아군은 전선 돌파를 위해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동시에 후방 도시와 인프라에 수시로 자폭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가하며 민간인 피해를 키웠다.

지난달 초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개전 후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6천919명이 숨지고 1만1천7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검찰청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민간인 사망자가 8천300명, 부상자는 1만1천 명이라고 밝혔다. 실제로는 이들 집계보다 피해가 훨씬 크다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아울러 이번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난민 사태를 일으켰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 4천100만 명의 약 3분의 1인 1천300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고, 이 중 약 800만 명은 해외로 떠났다.

양국 군 피해는 더욱 막대하다. 최근 미국과 서방 전문가들이 추산하는 러시아군 사상자는 적게는 10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에 달한다. 1년간 사상자가 20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미군 사상자(약 2만5천 명 추산)의 4~8배에 달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이에 못지않은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격전지인 동부 전선에서 참호전 양상 속에 러시아의 인해전술이 펼쳐지면서 사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기반시설과 경제도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키이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재건 사업 비용은 1조 달러(약 122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30.4% 감소했다.



◇ 출구 없는 '치킨게임' 양국 대치에…"전쟁 수년간 계속될 수도"

엎치락뒤치락해온 전쟁은 봄이 다가오면서 그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조만간 대공세를 예고한 러시아는 벌써 동부와 남부 각지 전선에서 파상 공세를 펴면서 우크라이나의 방어 태세를 시험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까지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라는 지시를 군에 내렸다고 밝혔다.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가 위협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갈수록 거세지는 러시아의 공세에 따라 서방의 주력전차와 장거리 미사일 지원 결정을 끌어낸 데 이어 전투기까지 요청하고 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30개국도 이번 봄이 전쟁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 분수령이라고 보고 무기 전달에 속도를 내기로 뜻을 모았다.

이처럼 양측이 결전을 준비하면서 전쟁 1주년이 확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7일 유엔총회에서 "평화의 가능성이 계속 줄어드는 반면, 추가적 긴장 고조와 유혈 사태의 확률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양측 모두 결정적 우위를 점하기 힘들어 보이는 가운데 평화협상 요구가 끊이지 않지만 양국 입장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는 상황이다.

서방 일각에서는 한반도식 우크라이나 분할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 역시 당장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런 가운데 전쟁이 끝 모를 장기전의 수렁으로 끌려 들어갈 수 있다는 잿빛 전망도 제기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16일 공개된 AFP와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인접국을 좌우할 수 있는 '다른 유럽'을 원한다"며 전쟁이 수년간 계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용병 기업 와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도 전쟁이 향후 2년 이상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jos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