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TV 생방송 중 반전시위' 러시아 언론인 프랑스 피신
"전쟁 중단, 정치선전 말라" 플래카드 들어 가택연금
국경없는기자회 도움받아 몰래 차량 7대 갈아타고 월경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지난해 러시아 국영 TV 방송 도중 전쟁 중단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시위한 러시아 언론인이 프랑스로 피신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가 있는 국경없는기자회(RSF)는 13일(현지시간) 러시아 프로듀서 마리나 오브샤니코바(44)의 탈출을 지원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오브샤니코바는 지난해 10월 러시아에서 재판을 앞두고 유럽 국가로 출국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지만, 안전상 이유 등으로 행선지를 공개하지 않았다.
오브샤니코바는 러시아군에 대한 거짓 정보를 유포해 군의 권위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전자팔찌를 착용한 채 가택 연금 상태로 조사를 받아왔다.
RSF는 자택 인근 경비가 느슨해지는 주말을 이용해 오브샤니코바의 팔찌를 절단하고, 총 7대의 자동차를 동원에 그를 탈출시키는 작전을 세웠다.
오브샤니코바를 태운 자동차가 국경에 도착하기 직전 진흙에 빠지는 바람에 어둠 속에서 몇 시간을 걸어간 끝에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고 RSF는 전했다.
크리스토프 들루아르 RSF 사무총장은 "오브샤니코바는 선전에 저항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역사와 뉴스 조작에 반대할 수 있음을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오브샤니코바는 "RSF가 특별한 지원으로 전범들이 정부를 장악한 러시아에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주고, 나의 생명을 구해줬다"는 소감을 밝혔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오브샤니코바는 2022년 3월 러시아 국영 채널1 TV 뉴스 방송 도중 진행자 뒤에 나타나 기습 시위를 벌여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오브샤니코바는 뉴스 진행자 뒤에서 "전쟁을 중단하라. 프로파간다를 믿지 마라. 여기에선 당신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적은 팻말을 들어 보였다.
이 일로 오브샤니코바는 집회·시위법 위반 혐의로 3만루블(약 52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에도 반전시위를 계속해왔다.
지난해 8월에는 크렘린궁 건너편의 모스크바강 둑에서 '푸틴은 살인자. 그의 군대는 파시스트'라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하는 사진을 텔레그램 계정에 올렸다가 기소됐다.
오브샤니코바가 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자국군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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