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강진] 신축건물도 '폭삭'…"부실규제·솜방망이 처벌 탓"
전문가 "지진 강했지만 잘지은 건물 완전붕괴엔 문제"
1960년대부터 건축규제 위반에 행정처분 감면 되풀이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튀르키예를 강타한 지진으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지진의 규모도 컸지만 그만큼 건물이 너무 많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새벽에 갑자기 들이닥친 강진으로 잠들어 있던 주민들이 대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건물 잔해에 깔려 이미 1만명을 넘어선 사망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영국 방송 BBC는 지진 피해지역의 상황이 전달되면서 현지의 건축 안전규제 등이 허술하고, 규제가 있더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상황이라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BBC는 지진의 타격을 받은 동부 도시 멜레티에서 무너진 한 빌딩은 작년에 완공된 것으로, 소셜미디어에는 이 건물이 최신 방진 규제를 통과했고 최고의 자재와 기술로 지어진 1등급 건물이라고 홍보하는 분양광고 이미지가 떠돌고 있다고 전했다.
항구도시 이스켄데룬의 한 아파트는 2019년 지어졌으나 지진으로 인해 거의 두 개로 쪼개져 한쪽이 폭삭 내려앉았다.
건축 전문가들은 아무리 지진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지어진 건물은 어떻게든 선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재난학 교수 데이비드 알렉산더는 "지진은 매우 파괴적이었지만 잘 지어진 건물을 완전히 무너트릴 수준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에서는 1만7천명의 사망자를 낸 북서부 대지진이 발생한 1999년 이후 내진 규제가 대폭 강화됐고, 2018년에도 내용이 더 추가됐다.
최신 방진 규제는 지진이 발생하기 쉬운 지역에선 건축물에 고품질 콘크리트를 쓰고 철근으로 보강하도록 한다.
기둥과 보는 지진의 충격을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구성돼야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내진 규제도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렉산더 교수는 "신축이 아닌 기존 건물에 적용할 수 있는 방진 규제가 너무 부족하고, 신축 건물에 대한 규제도 안전 수준을 충분히 높이지 못했다"라고 평가했다.
부실 건물이 양산된 데는 정부의 방만한 관리도 한몫했다고 BBC는 전했다.
정부는 1960년대 이후 주기적으로 안전 규제를 위반한 건물에 대한 과태료 등 행정처분 등을 감면해줘 부실 건물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것이다.
튀르키예의 건설공학자 펠린 피나르 기리틀리올루는 "튀르키예 남부의 지진 영향권 지역의 건물 7만5천개 정도는 이같은 행정처분 면제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20년 서부 이즈미르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BBC 튀르키예 지국은 이즈미르의 67만2천개 건물이 행정처분 면제 조치를 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BBC는 지진 발생 직전 튀르키예 언론들은 최근 건설된 건물에 대한 추가적인 감면 조치를 담은 법안이 의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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