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제재에 러 원유 수출 어두운 대체 경로로…에너지시장 분열

입력 2023-02-02 05:18
서방 제재에 러 원유 수출 어두운 대체 경로로…에너지시장 분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해운·금융 등 '그림자' 인프라 탄탄

중국·인도 외 목적지 모르는 화물 급증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서방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어두운 대체 경로로 원유 수출을 계속하고 있고, 세계 에너지 시장은 더 분열되고 위험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온라인판에 게재한 '러시아가 산업적 규모로 원유 제재를 피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러시아 원유 수출을 뒷받침하는 '그림자' 해운과 금융 인프라가 탄탄하고 광범위하며, 러시아 원유가 거래되는 '회색 시장'은 추가 제재 이후 더 확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러시아 원유 수출은 작년 12월 유럽의 첫 제재 후 타격을 입었지만 두 달 후에는 작년 6월 수준을 회복했다.

중국과 인도가 예상대로 물량을 대부분 빨아들였지만, 목적지를 알 수 없는 화물 운송량도 껑충 뛰었다.

일부는 과거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이 이용한 '검은 경로'로 거래되고 있다.

낡은 유조선이 이름과 색깔을 여러 차례 바꾸면서 은밀히 운송하고, 복잡한 터미널에서 다른 원유와 섞는 방식이다.

최근 걸프만에 정박했던 대형 유조선 몇 대가 지브롤터 해안의 작은 러시아 선박에서 화물을 가져오다가 적발됐다.

오만과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해 1∼10월 러시아 원유 수입량이 이전 3년 합계보다도 많은데, 이 중 일부를 다른 원유와 섞어서 유럽에 판 것으로 보인다.

사실 러시아는 이런 불법 경로를 통하지 않고도 비서방 국가의 물류를 이용해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에 수출하면 된다고 이코노미스트지는 말했다.

원유 거래, 운송, 보험에서 서방 업체들이 빠진 자리에 정체가 모호한 새로운 업체들이 들어왔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러시아 측 원유 거래 업체들이 제네바에 있다가 두바이와 같이 더 '친근한' 곳으로 많이 옮겼고, 서방 업체들이 빠진 자리엔 인도, 스리랑카, 터키의 경험 없는 업체들이 들어왔다.

지난해엔 러시아 항구에 정박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중고 유조선 거래가 폭발적으로 이뤄졌다.

보험은 제재 영향을 피하기가 조금 더 까다롭지만 역시 작년 12월 이후 러시아 정부와 기업들이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 업체 카이로스는 중국과 인도의 원유 저장탱크가 아직 3분의 2도 안 찼기 때문에 이런 '회색 거래'가 성장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앞으로 서방이 러시아산 디젤·중유 등 정제 유류제품과 관련해 제재하면 러시아는 원유를 최대한 많이 수출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과 인도는 정제제품 수요가 없고, 브라질과 멕시코 등 다른 지역은 거리가 멀어서 애로가 있기 때문이다.

'회색 거래'가 늘어나면 러시아로선 서방과 관련 없이 수출하고 가격 투명성을 낮추는 이점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지는 분석했다.

반면 나머지 세계는 끔찍한 부작용에 시달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원유 시장이 지정학적 선을 따라 분열된다고 봤다. 작년 12월 서방 주요 업체들은 러시아 원유를 운송하는 유조선은 이용하지 않겠다면서 선주들에게 편을 들라고 요구했다.

또, 세계 석유 상당량이 평판 없는 회사를 통해 거래되고 낡은 배로 운송된다는 점은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사고가 나더라도 보험사들이 보상할 능력이 없을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지는 덧붙였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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