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닝쇼크 속출한 실적시즌…주요기업들 허리띠 더 졸라맨다
투자 최소화·비용절감…재무구조 건전성 확보에 집중
올해 '상저하고' 전망…삼성전자 '인위적 감산 없다' 입장 바뀔지 주목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설 연휴 이후 국내 기업의 작년 실적 발표 시즌이 막을 올리며 역대급 '어닝 쇼크'(실적 충격)라는 성적표를 받아드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경기 침체 장기화가 현실화한 가운데 올해 하반기는 돼야 시장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주요 기업들도 불요불급한 투자를 최소화하는 등 허리띠를 더 졸라맨다는 계획이다.
◇ 줄줄이 '어닝쇼크'…차·배터리만 '훨훨'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각각 오는 31일과 다음달 1일 작년 4분기와 연간 확정 실적을 발표한다.
앞서 삼성전자가 이달 6일 공시한 잠정 실적을 보면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4조3천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0% 급감했다. 연간 영업이익은 43조3천700억원으로 16.0% 감소했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1개월 내 발표된 증권사 실적 전망(컨센서스)을 집계한 결과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손실 추정치는 1조3천734억원이다.
이미 확정 실적을 발표한 주요 기업 상당수는 '어닝 쇼크'를 경험했다.
LG전자[066570]는 연결 기준 작년 매출액이 83조4천673억원을 기록, 사상 처음으로 80조원을 돌파했지만, 영업이익이 12.5% 감소한 3조5천510억원에 그치며 빛이 바랬다. 4분기 영업이익은 69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0.7% 급감했다.
LG디스플레이[034220]는 사상 처음으로 작년 한해 2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내는 역대급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로 전 세계 IT 제품 수요가 얼어붙으면서 전자부품 업체인 LG이노텍[011070]과 삼성전기[009150]도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각각 60.5%, 68% 급감하며 나란히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포항제철소 가동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포스코도 반토막 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나마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가 실적 성장세를 이어갔다.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는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양사의 작년 매출은 229조865억원, 영업이익은 17조529억원으로, 품질비용 등의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영업이익 20조원 달성을 노려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도 전기차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연간 영업이익 1조원·매출 25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썼다.
◇ 올해 '상저하고'…"불요불급 투자 최소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자동차와 배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은 올해 1분기에도 실적 반등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등에 따른 경기 침체 여파가 이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1.3%, 2.1%로 제시했다. 하반기 이후 대외 불확실성이 줄어들면서 부진이 완화하고 경기가 반등할 것으로 봤다.
현대경제연구원 역시 19일 발표한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1.8%로 낮춰 잡고, 상반기 1.6%·하반기 2.0%의 '상저하고'를 예상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하반기 반등에 대비해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투자는 유지하되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며 재무 건전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LG전자는 27일 콘퍼런스콜에서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 글로벌 수요 둔화 추세 등 사업환경 변화에 대응해서 불요불급한 투자는 최소화하고, 효율적 자원 운용을 도모해 재무 건전성을 제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의 신사업 발굴과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한 투자는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설비투자는 전년 수준인 2조원 중반대로 예상했다.
LCD TV 출구전략 등 사업구조 고도화에 나선 LG디스플레이는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해 필수 경상 투자와 수주형 프로젝트 중심으로 투자를 최소화할 방침이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7세대 LCD TV 팹(공장) 종료나 중국 8세대 LCD 팹의 단계적 생산축소 등은 단순한 생산축소 문제가 아니고 그곳에 투입되는 비용을 줄인다는 점을 같이 말씀드리는 것"이라며 "1분기에만 비용 효율화 등을 통해 1조원 정도 절감하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원가 절감과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난 25일부터 철강 부문 비상 경영 태스크포스(TF)를 가동 중이다.
◇ '인위적 감산 없다'던 삼성전자, 입장 바꿀까
한파가 몰아닥친 반도체 업계의 경우 올해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과 재고 부담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가격이 전분기보다 13∼18%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이 잇따라 투자 축소와 감산 계획을 내놓는 등 반도체 수급 개선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생산라인 재배치와 신규증설 지연, 미세공정 전환 확대 등을 통한 간접적 감산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는 그동안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감산에 대한 입장 변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는 31일 실적 발표 후 진행될 콘퍼런스콜에서 새로운 방향성이 제시될지 주목된다.
도현우 NH투자증권[005940] 연구원은 "표준 중심의 범용 양산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는 특성상 수요가 부진하더라도 공급이 수요를 밑돌 경우 가격 상승이 가능하다"며 "상대적으로 투자 여력이 있는 삼성전자도 1분기 반도체 부문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올해 투자를 축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001500] 연구원은 "메모리 회사들의 적극적인 공급 감소 노력으로 하반기부터 수급은 개선될 것"이라며 "올해 2분기를 기점으로 고객사 재고는 크게 소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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