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반노조 시대' 맞는 카카오…IT 기업 정체성 지킬까

입력 2023-01-19 05:03
수정 2023-01-19 10:17
'과반노조 시대' 맞는 카카오…IT 기업 정체성 지킬까

IT 산업 생명인 신속 의사결정·인사 유연성에 제동 우려 시각도

네이버 등 업계에 영향 관측…크루 유니언 "논란·혼란 줄이는 방향으로 활동"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 지회(크루 유니언)가 과반 노조 달성을 목전에 두면서 카카오는 물론 정보기술(IT) 업계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조가 커진 영향력을 기반으로 사내 주요 의사결정에 목소리 반영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빠른 의사 결정과 유연한 조직 개편 및 근무 시스템이 생명인 IT 기업으로서 장점을 잃고 정체성에 근본적 변화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다.

특히 강성으로 분류되는 민주노총은 대체로 중후장대 제조업 노조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터라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 국내 IT업계 최초 1천 명 이상 과반노조 탄생 임박

19일 IT 업계에 따르면 크루 유니언은 1천900여 명의 조합원을 확보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과반 노조를 달성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카카오 본사 전체 사원 수는 지난해 6월 반기보고서 기준 3천603명이다.

근로기준법상으로는 전체 근로자 산정 기준이 달라 아직 사원 대비 노조원 과반 여부가 불확실하지만, 노조 안팎에서는 최근 '전면 출근' 기조 발표 이후 가입률 급증 추세로 봤을 때 크루 유니언이 과반 노조로 공식 인정받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한다.

국내 IT 업계에서 조합원 1천 명 이상의 대형 과반 노조가 탄생하는 것은 크루 유니언이 첫 사례다.

앞서 지난 수년간 넥슨 자회사 네오플, 한글과컴퓨터[030520], 카카오모빌리티에서도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과반 지위를 차지한 바 있지만, 이들은 규모가 최대 수백 명 수준이다. 카카오 본사 노조원만 1천900여 명, 계열사 전체에서는 4천여 명 규모인 과반 노조의 등장이 회사와 업계에 미칠 파급력을 아직 가늠하기 어려운 이유다.

과반 노조로 인정되면 회사 전체 노동자들을 대신해 사측과 단체교섭에 나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크루 유니언 측은 이미 카카오를 상대로 단체교섭권을 적용받고 있긴 하지만, 명실상부한 과반 지위는 차원이 다르다. 실질적 협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어서다.



◇ 과반 노조, 경영상 목소리 키우나…"회사·주주 이익과 상충 우려"

크루 유니언은 기자간담회에서 근무제 변경 시 직원들의 동의 절차 보장, 대규모 전환 배치 시 노사 합의, 임원 선임·역량 평가 제도화, 통합 논의기구 설치 등의 요구사항을 제시한 상태다.

향후 과반 노조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임원 등 인사, 인수·합병(M&A), 분사 등 경영상 주요 의사결정에 목소리를 키울 것이라는 관측이 업계에서는 나온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을 두고 카카오가 중요한 분기점에서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10월 서비스 먹통 사태가 부른 위기를 여전히 극복 중이고, 신사업·글로벌 진출 등에 나서고 있다.

우선 경영진이 주요 의사결정 전에 노조와 논의를 거치게 되면 IT 기업으로서 그간 보여온 신속한 의사 결정이나 유연성 등의 강점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예컨대 최고경영자(CEO)의 판단에 따른 유능한 사원의 초고속 승진,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한 유연한 조직 개편 등은 물론, 무엇보다 빠른 의사 결정과 보안이 필수인 M&A나 신사업 진출 등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미 기업 규모가 날로 커지며 임원이 급격히 불어나는 등 조직이 관료화된다는 지적을 받는 카카오가 과반 노조의 출현으로 또 하나의 도전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지점이다. 카카오는 창사 이후 10년간 상법상 필수 임원(등기이사·사외이사) 7명을 제외한 미등기 임원을 두지 않았다가, 2021년 3분기 기준 미등기 임원 11명을 처음 선임한 뒤 지난해 3분기에는 16명까지 늘렸다. 한때 7명이었던 임원이 총 23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노조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크루 유니언 요구를 보면 회사 경영 차원의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회사 입장에서는 경영 효율화나 전략적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질 수 있고, 노조의 목적은 주주의 이익과도 일부 상충하는 지점이 있을 수 있어 우려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카카오 노조 "기우"…전문가 "귀족 노조화 지양"

이런 우려에 크루 유니언 서승욱 지회장은 "회사에 (내부 이동 제도, 임원 책임·권한 등에 관한) 규정이나 절차가 없었던 데서 빚어진 사회적 논란과 조직 내 혼란을 줄이는 방향으로 활동할 것"이라며 기우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 지회장은 "IT기업 특성상 조직이 빨리 바뀌어야 하지만, 그간은 너무 제한이 없어 정도가 지나쳤다고 본다. 노조와 함께 규정과 절차를 정립하면 유연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며 "M&A 등 결정에 대해서도 지난해 카카오모빌리티 매각 논란 등 노동 환경에 영향을 미칠 만한 부분이 아니면 모든 걸 다 논의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카카오에 과반 노조가 나타난 배경은 임원 스톡옵션 매각, 골목상권 침해 논란 등으로 빚어진 경영 불신 상황에 노조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면서 "기존 대형 노조처럼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귀족 노조화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IT업계에서 노조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크루 유니언에 이어 네이버의 민주노총 지회인 '공동성명' 등도 급성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수운 공동성명 교육홍보실장은 "카카오 노조의 성장에 편승해 가입률을 높이려는 계획은 없다"면서도 "크루 유니언이 그간 잘해 온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 IT 업계에서도 '노조가 우리를 보호해 주는구나'라는 인식이 확산할 것 같다. 응원과 연대를 표한다"고 했다.

카카오는 과반 노조 출현에 대해 "회사는 함께 고민할 파트너가 생긴다는 점을 중시하고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다양한 논의 사항에 대해 함께 소통하며 풀어나갈 것이며, 향후 근무제도 등 변화에 대해 사원협의회, 크루 유니언 등과 다양한 소통을 바탕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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