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그너 그룹' 잔혹성 폭로한 전 지휘관, 노르웨이로 필사 탈출
영국 신문에 탈출기 "달리고 또 달려…잡혔다면 처참히 죽었을 것"
"병력손실에 흉악범까지 전장 투입…연쇄살인범도 지원 희망 밝혀"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러시아 민간 용병단체 '와그너 그룹'의 한 지휘관이 목숨을 건 탈출극에 성공해 노르웨이에 도착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바흐무트 지역에 배치된 와그너 부대에서 탈주해 러시아에 잠적해 있다가 최근 북극 지역 국경을 넘어 노르웨이로 탈출한 전과자 출신의 와그너 부대 지휘관 안드레이 메드베데프의 탈출기를 소개했다.
메드베데프는 새해 들어 어느 날 새벽 2시께 북극 지역에 있는 약 200km 길이의 러시아·노르웨이 국경 철조망을 기어올라 얼어붙은 파스비키 강을 건넜다.
그는 "뒤에서 수색견들이 짖어 대는 소리가 들렸고 탐조등이 켜진 가운데 내쪽으로 총탄이 날아왔다. 무작정 숲을 향해 달렸다"고 탈출 당시의 숨 가빴던 상황을 전했다.
얼어붙은 불모지에 세워진 이 국경은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대치하는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지역 가운데 하나다.
메드베데프는 러시아 국경수비대가 추격이 가능한 가장 먼 지점까지 자신을 뒤쫓았으며, 수색견 한 마리도 풀어 놓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집들의 불빛을 향해 뛰고 또 뛰었다. 아마 수색견이 헷갈려 길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메드베데프는 불 켜진 첫 번째 집의 출입문을 세게 두드려 도움을 요청한 뒤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절도범으로 복역했던 메드베데프는 지난해 7월 출소한 뒤 와그너와 계약했다. 당초 4개월 계약으로 우크라이나 전장으로 갔지만 계약이 만료되고 나서도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얘길 듣고 탈영을 결심했다.
부대원들의 도움으로 부대에서 탈출한 그는 러시아에 잠적해 있다가 지난해 12월 와그너 그룹의 잔혹성을 폭로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수배 대상 1호'에 올랐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난민 수용센터에서 인권단체 '굴라구'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만약 그들이 나를 붙잡았더라면 당연히 죽였을 것이고, 그보다 더 나쁠 수도 있었다"며 몸서리를 쳤다.
와그너 부대 지휘관으로 근무할 당시 탈영했던 전과자 출신의 한 부대원이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혔다가 포로 교환으로 풀려나 부대로 되돌아온 뒤 끔찍한 복수를 당한 일을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 탈영병은 동료 용병이 휘두른 큰 망치에 머리가 박살 나면서 숨졌다고 한다.
메드베데프는 와그너 그룹이 '묘트'(꿀)로 불리는 특수부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부대의 임무는 탈영병들을 끝까지 추적해 붙잡아 온 뒤 자기들 식으로 복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심복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운영하는 와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요충지 공격의 선봉에 서 있는데, 교도소에서 중범죄자들까지 데려와 계약을 맺고 전투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살아남으면 사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죄수 수 천 명이 전쟁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그래프는 와그너 그룹이 지속적인 병력 손실로 또다시 죄수모집에 나서야 할 상황이라면서, 시베리아와 극동에서 80여 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연쇄살인범 미하일 폽코프도 지원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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