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문화부장관 "단테는 이탈리아 우파 사상의 창시자" 발언 논란
석학 카치아리 "터무니 없어"…"저런 장관 임명한 총리도 문제"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의 젠나로 산줄리아노 문화부 장관이 14일(현지시간) '신곡'을 쓴 알리기에리 단테가 이탈리아 우파 사상의 창시자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산줄리아노 장관은 이날 단테의 저작에는 "심오한 우파적 정치 구상이 드러난다"고 평가하며 "우파는 위대한 문화를 갖고 있다. 이제는 그것을 긍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산줄리아노 장관은 이날 이탈리아 총리인 조르자 멜로니가 대표로 있는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이 롬바르디아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최한 밀라노 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무소속이지만 정치적 성향은 FdI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산줄리아노 장관은 최근 좌파 지식인과 정치인이 이탈리아어 대신 외래어를 남용하고 있다며 이를 '속물주의'라고 주장했다.
며칠 전에는 폼페이와 같은 유적지 입장료를 올려야 한다면서 이탈리아에 여행 온 일반적인 미국인 가족은 그 정도 돈은 충분히 지불할 여유가 된다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언론인 출신의 산줄리아노 장관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반발의 정도가 훨씬 컸다. 단테가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시인이자 철학자로 추앙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는 마시모 카치아리는 산줄리아노 장관의 발언에 대해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중도좌파 야당인 민주당(PD)의 이레네 만지 하원의원은 산줄리아노 장관이 단테를 희화화했다고 비난했다.
라파엘라 파이타 상원의원은 "산줄리아노 장관이 우파의 문화적 원류를 찾기 위해 단테를 괴롭히고 있다"며 "장관의 역사 인식에는 문제가 있고, 그를 장관으로 임명한 멜로니 총리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젤로 보넬리 녹색당 대표는 "오늘날 이탈리아 우파의 문화적 원류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이라며 "우리는 장관에게 단테를 내버려 둘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126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는 당시 지식인의 언어였던 라틴어 대신 조국의 언어인 이탈리아어(토스카나 방언)로 책을 썼다. 현대 이탈리아어의 정립에 크게 공헌한 단테가 '이탈리아어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지옥, 연옥, 천국의 세 영역을 통과하는 여정을 담은 그의 장편 서사시 '신곡'은 이탈리아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자 인류 문학사의 위대한 작품으로 널리 평가받는다.
이탈리아 정부는 2019년 그가 태어난 날인 3월 25일을 '단테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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