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 지적 '신한촌 기념탑' 블라디보스토크시가 직접관리 추진
한국총영사관 협의 나서…소유주체 불명확해 결론까지 시일 걸릴 듯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최수호 특파원 = 일제강점기 당시 치열한 독립운동이 펼쳐졌던 러시아 극동지역 한인 집단 거주지의 흔적을 간직한 '신한촌(新韓村) 기념탑'이 수년간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현지 당국이 이를 직접 관리토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총영사관은 작년 11월부터 블라디보스토크시와 이에 대한 협의를 벌이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이는 교민 등 사이에서 신한촌 기념탑이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데 따른 것으로, 총영사관 측이 해결방안 마련에 나선 것이다.
신한촌 기념탑은 1999년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가 회원들이 후원한 3억여 원을 사용해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카야 거리에 마련됐다.
높이 3.5m가량의 대리석 기둥 3개 주변으로 탑의 의미를 설명하는 비문 등이 설치돼 있다.
시설 관리는 기념탑 건립 초기과정부터 도움을 줬던 블라디보스토크 한 고려인단체 회장이 해외한민족연구소 측과 별도 계약 없이 임의로 맡아왔으며, 2019년 그가 숨진 뒤에는 부인이 대신하고 있다.
현지 교민들은 역사적 의미를 담은 기념탑이 들어선 이후부터 거의 매년 이곳에서 3·1절이나 8.15 광복절 행사를 개최했다.
또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아 기념탑에 헌화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도 줄을 이었다.
독립기념관도 홈페이지에서 신한촌 기념탑을 주요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2019년 말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를 찾는 한국인이 줄면서 기념탑을 찾는 발길도 뜸해졌다.
게다가 시설 훼손 방지를 이유로 기념탑 주변으로 철제펜스가 설치되고, 관리인이 자물쇠를 채운 출입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능해지자 현지 교민 등도 특별한 기념일이 아니면 찾지 않고 있다.
이처럼 기념탑이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예전과 달리 시설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년 전 연해주 한인회는 삼일절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기념탑 주위에 부러진 나뭇가지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자 자비를 들여 청소하기도 했다.
기념탑을 찾은 이 날 역시 출입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또 주변 도로와 달리 탑 상단과 주변 시설에는 2주 전에 내린 눈이 여전히 쌓여 있었다.
총영사관 측은 부실한 기념탑 관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시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실질적인 결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특히 협의 과정에서 기념탑 관리 및 소유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점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부터 기념탑이 정식으로 등록된 시설이라면 소유권이 블라디보스토크시에 있어 당국에 관리를 요청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 시설이 시에 정식으로 등록된 지 여부가 불명확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측은 "기념탑 관리·소유 주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시에 시설 허가부터 등록까지 전 과정을 다시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이 과정에서 미비한 점이 발견되면 보완 절차를 밟은 뒤 최종적으로 시가 기념탑 관리에 나서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한촌은 1911년 러시아 당국이 콜레라를 핑계로 당시 블라디보스토크항 인근 해안가에 형성된 한인들의 최초 정착지 개척리 마을을 강제 폐쇄하자 북쪽으로 3∼4㎞가량 떨어진 시 외곽 야산에 조성한 한인 집단거주지다.
1915년 이곳에 거주했던 주민은 1만 명에 이르렀고 이동휘, 이상설, 홍범도 등 빼앗긴 국권을 되찾으려는 우국지사들이 집결하면서 항일 독립운동의 요람이 됐다.
하지만 현재 이곳에는 아파트와 상가시설 등이 들어서 예전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 없으며, 기념탑만이 이곳이 옛 신한촌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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