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넘긴우크라전 가다] 아물지 않은 상처…러 물러간 자리에 참상 흔적 그대로

입력 2023-01-10 06:01
수정 2023-01-17 11:21
[해넘긴우크라전 가다] 아물지 않은 상처…러 물러간 자리에 참상 흔적 그대로

러시아군 막으러 폭파한 교량 보존, 곳곳에 폐허…비닐로 외풍 견디는 주민들

총탄에 찢긴 차량무덤도 덩그머니…궂은 날씨 속 쓸쓸한 부차 공동묘지

러군 총탄에 숨진 삼촌 만나러 온 시민의 외침 "이번 전쟁 꼭 이겨야"



(이르핀·부차[우크라이나]=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지난해 3월 초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포위하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우크라이나군과 시민들은 수도를 지키기 위한 결단을 내렸다.

키이우 북서쪽에 위치한 이르핀과 키이우를 잇는 교량을 폭파함으로써 러시아 탱크의 진격을 최대한 늦추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희생으로 키이우는 극적으로 지켜낼 수 있었지만, 수많은 피란민이 포격이 오가는 가운데 끊어진 다리 아래에서 위태롭게 강을 건너야 했다.

8일(현지시간) 눈발이 날리는 강추위 속에 찾은 이곳 다리는 이제는 추모 공간이 돼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을씨년스럽고 무거운 공기가 휘감은 황량한 이 공간에는 전쟁이 1년이 되도록 아물지 않는 상처가 배여 있었다 .





엿가락처럼 휘고 끊어진 다리 상판에는 철근이 고스란히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었고, 아래에는 피란민들을 위해 설치한 널빤지가 위태롭게 강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널빤지 옆으로는 강에 거꾸로 추락한 승합차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며 당시의 참상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었다.

피란민들이 위험하게 구조를 기다리던 곳에 이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응원하는 그림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상징물이 설치됐다.

차량은 임시 우회로로 다니고 있었지만, 대체 교량 공사는 전쟁 중에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격렬한 시가전의 흔적은 길가에 생긴 차량의 무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는 주차장으로 쓰이던 축구장 크기의 공간이 이제는 폐차 야적장으로 변한 것이다.

승용차와 승합차, 트럭 등 다양한 차량이 2중, 3중으로 쌓여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차량에 셀 수 없이 많은 총알구멍이 박혀 있었고, 대구경 기관총을 맞은 차량은 아예 철판이 찢어져 있었다.



대부분 1년 가까이 비바람 속에 방치돼 검붉게 녹이 슬었고, 여기에 전날부터 내린 눈이 얇게 덮여 황량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들 차량에 해바라기 그림과 '희망의 꽃'이라는 문구를 남겼다.

이르핀과 부차 시내로 들어서자 곳곳의 건물들이 완전히 무너진 채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었다.



지붕이나 베란다, 한 쪽 벽이 없어진 곳도 있었고, 창문 너머로 치솟은 불길에 외벽이 검게 탄 곳도 있었다.

성한 건물들도 총알이 긁고 지나간 흔적이 선명했고, 모든 창이 멀쩡한 건물은 찾기 힘들 정도였다.

한 주민은 "그래도 많이 치우고 정리해서 이 정도"라며 "지난해에는 동네가 폐허나 다름 없었다"고 말했다.

한 5층짜리 아파트 단지는 포격으로 파괴된 집들이 빈 채로 방치됐다.



주차된 차들도 언제부터 방치됐는지 모를 정도로 망가지고 부서진 경우가 많았다.

일부 주민은 그나마 덜 부서진 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워낙 떠난 이들이 많은지 단지 내에는 인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 주민 이리나 씨는 "완전히 부서진 집에 살던 이들은 다른 곳으로 떠났다"며 "건물 전체가 위험해서 안전 진단을 받고 있지만 떠날 곳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도 외벽과 창문이 망가져 테이프와 비닐로 간신히 외풍을 막고 있었다. 강한 바람에 찢어진 비닐이 펄럭거리는 곳도 있었다.





이르핀과 북쪽으로 접해 키이우와 맞닿아 있는 부차의 공동묘지는 이날 따라 참배객이 거의 없어 적막하고 쓸쓸했다.

지난해 3월 러시아의 만행으로 숨진 희생자와 전사자의 묘가 많은 이 곳에는 차디찬 바람 속에 우크라이나 깃발만 펄럭이고 있었다.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한 소녀의 묘지에는 최근에 갖다 놓은 듯한 꽃과 인형이 놓여 있었다.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총탄에 숨진 삼촌을 만나러 왔다는 올렉시 씨는 이번에 새로 가져온 삼촌의 사진을 원래 있던 낡은 사진과 바꿔 걸었다.

올렉시 씨는 "삼촌과 오랫동안 한 집에 살았다. 워낙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며 "삼촌을 보러 아무 때나 자주 온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상처가 깊은 듯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삼촌에게 마음으로 어떤 말을 전했느냐는 질문에 "이번 전쟁은 꼭 이겨야 한다"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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