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넘긴우크라전 가다] 전쟁 후 첫 성탄, 키이우의 기도 "영웅들 무사히 돌아오길"
강추위에도 성당에 남녀노소 줄이어…"오늘도 전투하고 있을 우리주변 누군가를 위해"
"우크라 승리로 전쟁 끝나야…러시아는 우리를 파괴 못해, 더욱 뭉치고 강해질 뿐"
이번이 '마지막 1월7일 성탄' 되나…반러정서 영향, 12월25일로 변경 주장 '대세'
(키이우[우크라이나]=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정교회 신자가 다수인 우크라이나에서는 전통적으로 매년 1월 7일을 성탄절로 기념한다.
7일(현지시간) 전쟁 후 맞은 첫 성탄의 아침, 키이우는 전날부터 내린 진눈깨비로 건물 지붕들이 하얗게 덮여 조금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강한 바람에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가 닥친 시내 주말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전날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성 볼로디미르 대성당은 멀리서부터 개나리색 외관이 눈에 띄었다.
정교회를 국교로 선언한 볼로디미르 1세를 기념해 1882년 지어진 이 대성당은 옛 소비에트 연방 시절 박물관으로 쓰이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성당이 된 곳으로, 키이우를 대표하는 성당 중 한 곳이다.
성탄절을 맞은 성당은 신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성당 안은 미사와 함께 성가가 울려 퍼져 엄숙하고 거룩한 분위기였다.
제단에서 신부가 예배를 올리고 수많은 신자가 선 채로 함께 하고 있었다.
일부는 향로에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고, 누군가는 벽에 있는 그림에 머리를 대고 축원을 올렸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의 발에 입을 맞추는 이도 있었고, 감정이 북받친 듯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는 노인도 있었다.
미사에 집중하든 홀로 기도를 하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탄절을 기념하는 모습이었다.
이들 중에는 군복을 입은 백발노인, 혼자 온 듯한 군인, 손자 손녀 3남매와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꼭 잡은 부부도 있었다. 바닥에 드러누워 칭얼거리는 어린아이까지 남녀노소 모든 이들이 성당을 찾은 듯했다.
남편, 어린 아들과 함께 성당을 찾은 안나 씨는 "원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요즘처럼 흉흉한 때 종교가 도움이 될 것 같아 남편을 따라왔다"며 "오늘 와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용감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특히 전쟁 이후 처음 맞은 성탄절의 의미를 더욱 각별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온 아나스타샤 씨는 "성탄절인 오늘도 우리 주변의 누군가는 전투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들 영웅이 모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코스티아 씨도 "우리 모두 영웅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오늘은 특별히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나라를 지키는 영웅들이 없다면 지금 성탄절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친구 중에도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서 "날씨가 추워지니까 친구들 걱정이 된다. 나도 여기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군인들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1월 7일 정교회 방식에 따라 성탄절을 기념하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이들도 많았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전쟁 이후 강해진 반러시아 정서에 따라 이번 성탄절부터 1월 7일 대신 기독교 방식으로 12월 25일에 성탄 예배를 해도 되도록 허용했다.
코스티아 씨는 "노년층에선 거부감이 있지만 젊은 층이나 중년층 신자들은 12월 25일로 성탄절을 바꾸는 데 대부분 찬성한다"고 했고, 아나스타샤 씨도 "의미가 중요하지, 날짜가 뭐가 중요하냐. 바꾸는 게 좋다"고 호응했다.
시민들은 평화와 사랑, 축복의 날을 맞아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길 바라면서, 이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만으로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나스타샤 씨는 "모두가 전쟁이 끝나길 바라지만 러시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푸틴이 죽어야 끝날 것"이라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문화, 삶은 절대 파괴할 수 없다. 우리는 더욱 뭉치고 강해질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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