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병력수송 인프라 재정비…'나토 동진' 고속도로 뚫리나
EU·나토, 전시 병력·물자 이동 가로막는 규제 철폐키로
가벼운 소련제 전차 쓰는 동구권내 이동은 아직 숙제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간의 군사력 이동을 가로막았던 제도적·물리적 장벽이 대거 철폐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맞설 완충지대로 삼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도와는 반대로 나토의 동진(東進)을 위한 고속도로가 깔리는 셈이다.
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991년 소비에트연방(소련)의 붕괴는 서방의 전시 병력·물자 수송 인프라가 함께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민간부문은 물론 군 당국조차 전쟁의 위협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면서 이러한 인프라를 유지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철도회사들은 전시용 철도차량을 팔아치웠고, 탄약과 폭발물 등 위험물의 국가간 이동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신설됐다.
그러던 서방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하고서야 러시아와의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했다.
벤 호지스 당시 유럽 주둔 미 육군사령관은 이후 퇴역하기까지 4년에 걸쳐 유럽내 군사 기동성 강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나토는 2018년 유럽내 병참과 대서양 수송을 위한 2개 지휘구조를 신설했다.
하지만, 작년 2월부터 11개월째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노력이 충분치 못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줬다.
실제, 작년 9월에는 나토 회원국인 루마니아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프랑스 르클레르 전차를 이동 배치하는 과정에서 독일 정부가 자국내 고속도로 이용을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프랑스제 전차운반용 차량이 도로에 가하는 부담이 차축중량 기준으로 12톤(t)을 초과해 독일 도로법상 운행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해당 전차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철도로 운송돼야 했다.
유럽연합(EU)은 안보 강화를 위해 이런 제도적 장애물을 철폐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주권침해 우려 때문에 평소 나토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온 EU는 태도를 전환해 도로·철도·해상교통 관련 민간 기반시설 설계에 군사적 이용을 고려하도록 하는 방안을 나토와 논의하고, 군사장비 등의 국경간 이동을 원활히 할 세관 디지털화를 진행하고 있다.
EU 비회원국인 노르웨이와 캐나다, 미국은 물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원만치 못한 관계가 된 영국까지 아우르는 나토 회원국내 군사 기동성 강화 프로젝트 추진에 착수한 것이다.
다만, 단시일내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긴 힘들어 보인다.
특히 옛 소련권 군사동맹체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속해 있다가 1999년 이후 잇따라 나토에 합류한 동유럽 국가들의 상황이 심각하다.
이들 국가는 여전히 소련제 무기를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중량이 가벼운 소련제 전차 등에 맞춰 자국 내 터널과 교량을 건설한 까닭에 서방 무기를 대량으로 이동시킬 경우 붕괴 위험성이 있어서다.
지난달까지 EU 순회의장국을 맡은 체코의 얀 이레시 국방차관은 "소련제 장비는 (서방 장비의 이동을 억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더 가볍게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나토와 EU는 동유럽의 교통 기반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WSJ은 전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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