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법원, 피해자와 결혼한 성폭행범 석방…판결 논란
지역 원로회의 중재…인권단체 "성폭행 사실상 인정" 반발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파키스탄에서 성폭행범이 피해자와 결혼하는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석방돼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과 현지 매체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20대 성폭행범 다우라트 칸이 지난 26일 석방됐다.
이번 석방은 폐샤와르 고등법원이 칸과 피해 여성 간의 '결혼 합의'를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북서부 카이버·파크툰크와주에 살던 피해자는 미혼 청각 장애인으로 올해 초 출산했다. 이후 친부 검사 절차를 거쳐 칸이 신생아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곧이어 체포됐다.
지난 5월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칸은 이후 피해자와 결혼하라는 지역 원로회의의 중재를 받아들였고 법원도 이를 토대로 석방 결정을 내렸다.
칸의 변호인인 암자드 알리는 칸과 피해자는 친족 사이라며 "양측 집안은 원로 회의의 도움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인권 단체 등은 법원 결정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인권운동가이자 변호사인 이만 자이나브 마자리-하지르는 이번 결정은 성폭행을 사실상 승인한 것이라며 "이는 정의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영리 인권단체 '파키스탄 인권위원회'도 "성폭행은 타협 불가능한 범죄로 설득력 없는 결혼 합의를 통해 해결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파키스탄은 성폭행범이 재판을 거쳐 유죄를 선고받는 일이 드문 나라로 알려졌다.
형사 재판 시스템이 부실하고 복잡한데다 법정 밖 타협으로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지 인권단체 집계에 따르면 재판에 회부된 성폭행 사건 중 유죄 선고 비율은 3%에도 미치지 않는다.
특히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피해를 숨기는 이들이 많아 애초에 신고되지 않은 성폭행 사건도 매우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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