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러시아도 버거운데…서쪽 헝가리도 우크라의 '골칫거리'

입력 2022-12-27 11:18
동쪽 러시아도 버거운데…서쪽 헝가리도 우크라의 '골칫거리'

극우 성향 오르반 총리, 우크라 전쟁 이후 사사건건 '러시아편'

우크라 일부 지역은 친헝가리 주민 대다수…영토분쟁 불씨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서쪽으로 국경 137㎞를 맞댄 헝가리가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10개월 넘게 전쟁 중인 러시아와는 아직 직접 비교할 단계는 아니지만, 뿌리 깊은 양국의 반감이 언젠가는 중대한 정지적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헝가리와 우크라이나는 2월 러시아 침공 이후 사사건건 부딪쳤다.

침공 이후에도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헝가리는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할 때마다 앞장서 제동을 걸었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평화 협상을 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극우 성향의 오르반 총리가 한 행사장에 전성기 시절의 헝가리 지도가 그려진 스카프를 매고 나타났다.

스카프에 그려진 지도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이 일부 헝가리 영토로 표시됐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주재 헝가리 대사를 초치해 해명을 요구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오르반 총리를 향한 반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을 폐허로 만들던 3월, 헝가리가 대러시아 제재 도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EU에 보낸 영상 연설에서 오르반 총리를 직접 저격했다.



그는 당시 오르반 총리를 직함 없이 이름으로 부르며 "빅토르, 들어보시오. 마리우폴이 지금 어떤지 아시오? 그런데 지금 제재를 부과하니 마니 망설이시오? 망설일 시간이 없소. 이미 결정했어야 할 때요"라고 일갈했다.

이번 전쟁 이전부터 두 나라엔 근본적인 영토 분쟁 요소가 있다. 헝가리는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당시 국토의 3분의 2를 빼앗겼다. 헝가리인 200만 명이 해외에 거주하는데 이중 13만 명이 우크라이나에 산다.

우크라이나의 헝가리인 대부분은 서부 외곽지역 트란스카르파시아(우크라이나어 자카르파츠카)주에 거주한다. 한때 헝가리 영토였던 곳이다. 이곳에 사는 헝가리인 일부는 아예 우크라이나어나 러시아어를 하지 못한다. 뉴스도 헝가리 방송을 통해 듣는다고 한다.

전쟁도 남의 나라 이야기다. 한 주민은 WP에 "우린 트란스카르파시아에 있고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오르반 총리는 이 지역 일부 주민들에게 헝가리 여권을 발급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헝가리 시민이 되면 오르반 총리를 지지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헝가리 여권을 발급해주던 현지 헝가리 영사를 추방한 적도 있다.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헝가리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10월 여론조사에서 헝가리를 '적국'으로 본다는 우크라이나 국민은 40%에 달했다. '적국' 응답률이 러시아, 벨라루스에 이어 3위다.

이런 분위기 속에 헝가리인이 많이 사는 무카체보 시는 최근 헝가리의 국조(國鳥)인 상상의 새 '투룰'의 대형 동상을 4조각으로 잘라 해체하고, 그 자리에 우크라이나의의 삼지창 상징물 '트리주브' 대형 조형물을 세웠다. 안드리 발로하 시장은 "여긴 우크라이나 상징물이 있어야 할 자리"라고 한 이유를 설명했다.

씨야르토 페테르 헝가리 외무부 장관은 '불필요한 도발'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헝가리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도 불러 해명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와 헝가리 관계 전문가인 드미트로 투잔스키 중앙유럽전략연구소 연구원은 WP에 "이 문제가 언젠가 정치적 문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고 분석했다.

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