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17∼19세기 노예제 공식사과…'일방통행 사과' 비판도

입력 2022-12-20 02:53
네덜란드, 17∼19세기 노예제 공식사과…'일방통행 사과' 비판도

총리, '노예제 피해' 후손들 초청해 연설…배상금 대신 '역사교육기금' 신설 계획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19일(현지시간) 17∼19세기 자행된 노예무역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뤼터 총리는 이날 헤이그에 있는 국가기록관에서 한 연설에서 "지난 수 세기 동안 네덜란드 국가와 그 지도부들은 노예제가 가능하게 했고, 이로부터 이득을 봤다"면서 "네덜란드 정부는 당시 노예가 된 이들과 그 후손들에게 가해진 엄청난 고통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사과했다.

그는 노예제가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가장 명확한 개념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사과는 네덜란드가 과거 250년간의 경제·문화적 '황금시대'를 누릴 당시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자 60만 명을 노예로 착취한 데 대한 사과다.

이들의 후손에 대한 인종차별은 현재까지도 네덜란드에서 논란이 되는 현안 중 하나다.

뤼터 총리도 당시 남녀는 물론 어린이 60만 명가량이 소처럼 아프리카 등에서 네덜란드령이던 남미의 수리남 등으로 강제 이송됐다며 '부끄러운 역사'라고 시인했다.

이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위트레흐트, 헤이그 시장 및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 등이 개별적인 사과를 한 적은 있지만, 정부 차원 공식 입장 표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17∼19세기 유럽인이 착취한 노예 규모는 총 1천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유럽권 국가에서 네덜란드가 처음이라고 외신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날 연설 현장에는 노예제 피해자 후손들도 초청됐으며, 20분간 진행된 총리 연설은 현지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다만 뤼터 총리는 연설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노예제 피해자들의 후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배상금 지급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신 노예제 유산 청산 및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 기금 2억 유로(약 2천700억 원)를 편성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네덜란드 정부 차원 사과가 사전 협의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성급히 이뤄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과거사 해결을 촉구해온 관련 단체들은 네덜란드 정부가 공식 사과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알려진 뒤 네덜란드 식민지 노예제 폐지 160주년인 내년 7월 1일 공식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총리가 아닌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부 단체는 네덜란드 법원에 총리 연설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일종의 행정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과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있다.

수리남 국가배상위원회 측은 이날 사과가 과거사 해결을 위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연설에서 '책임과 의무'에 관한 내용은 쏙 빠졌다"고 짚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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