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첫 논문…유럽소생위원회 "최적 아닌 CPR사례 많아"
위원회, 일반인 CPR 분석…"압박속도 빨랐고 혈액 덜 찬 '빈 심장' 압박"
"심폐소생술 교육에 밀집지 압박사고 예방책 추가해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심폐소생술(CPR)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유럽소생위원회(ERC)가 이태원 참사 당시 일반인들이 주도적으로 시행한 CPR에 대해 '최적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는 분석이 담긴 논문을 내놨다.
국내외를 통틀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전문가들의 학술 논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5일 유럽소생위원회(ERC)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소생'(Resuscitation) 최신호에 따르면 슬로베니아 마리보르 대학 니노 피야츠코 교수, 제리 놀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 소속 공동 연구팀은 이런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유럽소생위원회는 유럽 내 심폐소생술 교육 관련 최고 권위 기관으로, 미국심장협회(AHA) 등과 함께 국제 소생술 교류위원회를 구성해 5년 주기로 CPR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위원회는 이번 논문에서 희생자들의 주된 사인이 압박 질식(compression asphyxia)에 따른 '저산소 심정지'(hypoxic cardiac arrest)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당시 사고 현장이 담긴 10개 영상물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일반인들이 시행한 심폐소생술과 관련해 세 가지 특징을 제시했다.
이 중 두 가지는 목격자 중 현장에서 바로 소생술을 시행하거나 구호전문가를 도운 게 대부분 청소년이었고, 이 청소년들이 희생자나 구호전문가를 도우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게 보였다는 점이었다.
다만 위원회는 세 번째 특징으로 "목격자들의 심폐소생술 수준이 최적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면서 "압박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이완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위원회의 이런 분석은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심장에 피가 충분히 들어오지 않아 이완이 덜 된, 즉 '빈 심장' 상태에서 심장을 압박했다는 의미라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상훈 교수는 "CPR은 가슴을 압박해 심장에 있던 혈액을 내보낸 다음 완전히 이완해야 심장에 피가 다시 들어온다"면서 "하지만 반쯤 이완된 상태에서 또 가슴을 압박한다면 내보내지는 혈액량이 적어 피가 없는 빈 심장을 압박하는 상황이 돼 소생 효과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밀집 지역에서 발생하는 압박사고에 의한 치사율을 줄이려면 심폐소생술 교육 때 ▲ 팔은 권투 자세를 취할 것(주먹은 얼굴에, 팔꿈치는 양 가슴 옆에 위치시켜 폐가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라) ▲ 에너지와 산소를 아끼기 위해 비명을 지르지 말 것 ▲ 바닥에 넘어졌을 때는 태아와 같은 자세로 웅크려 주요 장기를 보호할 것 ▲ 군중의 흐름에 따라 움직일 것을 권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위원회는 또 이태원 참사를 교훈 삼아 심폐소생술 교육에 밀집지 압박 사고와 같은 특수 상황별 교육을 추가하고, 잠재적인 사고 상황을 예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응급의학 전문가들은 유럽소생위원회가 내놓은 이번 분석이 향후 국내 심폐소생술 교육에도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유환 교수는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에서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라면 체계적인 심폐소생술 교육이 필수지만 현재는 강의와 단순 마네킹을 사용하는 방식이어서 관심도와 재교육률이 떨어지는 편"이라며 "메타버스(가상현실) 기법 등을 접목한 첨단 교육법과 법적인 보호 장치 마련 등을 통해 교육 방식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유럽소생위원회는 이번 논문에서 이태원 참사 이후 24시간 동안 영어로 작성된 트위터를 분석한 결과 두려움(fear·16.9%), 슬픔(sadness·16.1%), 신뢰(trust·14.1%), 기대(anticipation·13.6%), 기쁨(joy·12.8%), 놀람(surprise·10.4%), 분노(anger·8.9%), 혐오(disgust·7.3%) 등 감정표현이 많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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