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 증자참여 철회…행동주의 펀드 맹활약에 기업 움직인다(종합)

입력 2022-12-14 19:31
태광산업 증자참여 철회…행동주의 펀드 맹활약에 기업 움직인다(종합)

트러스톤 제동에 태광산업 "사업 혁신·개척에 집중할 것"

SM은 경영구조 변화·KT&G도 분할 압박 받아…"옥석 가려야" 조언도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홍유담 기자 = 최근 상장기업들을 향해 경영 방향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약상이 잇달아 주목된다.

행동주의 펀드의 압박이 기업들의 가시적 주주환원 정책 발표나 경영구조 변화로 이어지는 '승리의 경험'들이 쌓이면서 이들의 개입에 주가가 상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트러스톤,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증자 참여에 '제동'

최근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이 14일 이사회에서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안건을 의결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의 지분 5.80%를 보유하고 있다.

트러스톤은 최근 태광산업과 흥국생명은 지분 상의 관계가 없음에도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개인'이 흥국생명의 대주주라는 점 때문에 태광산업이 증자에 참여한다면 상장사인 태광산업 소액주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흥국생명은 이날 공시를 통해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기여하고 현재 보유 중인 가용자금을 활용한 안정적인 투자수익 확보를 위해 전환우선주 인수를 검토했으나, 상장사로서 기존사업 혁신 및 신사업 개척에 집중하기 위해 이를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사실상 애초의 계획을 철회했다.

이성원 트러스톤 부사장은 "태광산업이 (원래 알려졌던 대로) 증자에 참여했다면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이나 무효확인 등 법적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태광산업이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도 KT&G를 대상으로 한국인삼공사 인적분할과 거버넌스 재정립 등을 압박 중이다.

특히 FCP는 지난 10월 26일 이런 내용의 주주제안을 보낸 데 이어 최근 주요 주주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명회를 열고 KT&G 대표이사에게 공개토론도 제안했다.

KT&G는 지난달 3일 자사주 370만주를 매입하고 주당 배당금도 200원 이상 증액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공시했다.

KT&G는 지난해 11월 향후 3년간 배당 및 자사주 정책으로 2조7천5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 정책을 펴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후속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증권가에서는 최근 강화된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란 평가다.

이런 과정이 진행된 최근 한 달여간 KT&G의 주가는 8만9천400원(10월 25일 종가)에서 전날 9만8천100원까지 10% 가까이 상승했다.

SM엔터테인먼트도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경영쇄신으로 이어진 대표사례다.

얼라인자산운용은 에스엠[041510]이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에 매년 인세로 수백억원을 지급해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며 주주행동을 벌여왔다.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는 얼라인이 주주제안으로 올린 곽준호 감사 선인암이 가결됐고, 지난 9월에는 올해 말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조기종료를 검토하겠다고 공시한 뒤 지난 10월 이사회에서 이를 확정했다.

지난 4월 라이프자산운용이 SK그룹 지주사 SK에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냈는데 이후 SK는 지난 8월 2천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발표했다.



◇ 기업사냥 아닌 주주운동에 방점 찍으며 시장 호응…"옥석 가려야" 조언도

과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분쟁을 겪으며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사냥꾼'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행동주의 펀드는 해당 기업의 인수·합병(M&A)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의 지분 보유를 통해 배당 성향이나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하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에 최근 개인 주주들의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더욱 힘을 받으려면 각개전투식으로 목소리를 내기보다 기관투자자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창민 한양대 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은 "외국계 펀드보다 한국 기업과 재벌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국내 사모펀드가 중심이 될 필요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사모펀드만으로는 부족하고 기관투자자와 자산운용사가 연합해 함께 움직여 목소리를 낼 때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늘어날수록 '옥석 가리기'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동도 기본적으로는 수익을 올리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지만,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관점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주가를 띄우기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지 주의 깊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yk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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