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공화당 새대표 선출…"프랑스판 관타나모" 주장 강경우파
대선 참패 8개월 만에 에리크 시오티 체제로
마크롱, 내년 1월10일 연금개혁안 발표…정년연장 등 담길 듯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한때 프랑스 현대 정치사를 양분했으나 이제는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은 중도 우파 공화당(LR)이 새로운 대표를 선출했다.
지난 4월 대통령선거에 내세운 후보가 1차 투표에서 득표율을 5%도 확보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을 받은 지 8개월 만에 수장을 교체한 것이다.
12일(현지시간) 공화당에 따르면 에리크 시오티(57) 하원 의원은 전날 전당대회 결선투표에서 득표율 53.7%로 브뤼노 르타이오 상원 의원을 제치고 대표로 당선됐다.
프랑스 남부의 대표적인 휴양 도시 니스를 지역구로 하는 시오티 의원은 지난 대선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에서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주지사에 밀렸던 인물이다.
시오티 의원은 프랑스에 아주 강경한 이민·이주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파해왔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가 이주민의 "침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처벌하기 위한 프랑스판 관타나모를 세워야 한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공화당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프랑스에 제5공화국이 들어선 이래 샤를 드골,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등 대통령을 배출하며 국가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해온 정당이다.
그러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끝으로 중도를 지향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하원 대표에 밀려 설 곳을 잃었다.
2017년에 이어 2022년 대선에서도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대표가 1∼2위 자리를 두고 다투는 동안 공화당 후보 득표율은 20.0%에서 4.8%로 쪼그라들었다.
지난 6월 하원 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에서도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를 주축으로 형성한 좌파 연대 '뉘프'(Nupes), RN보다도 적은 의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프랑스 입법 양대 축인 상원에서 과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절대 과반을 점한 정당이 없는 하원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여전히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하원 의석 577석에서 여당인 르네상스를 포함한 범여권은 250석을 갖고 있고, 뉘프 150석, RN 88석, 공화당 62석으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여당 입장에서는 하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정부 정책에 번번이 날을 세우는 극좌 성향의 뉘프나 극우 성향의 RN보다 공화당을 설득하는 게 현실적인 전략이다.
이 때문에 마크롱 대통령 공약대로 정년을 현행 62세에서 65세로 늘려 연금 수급 시점을 늦추는 연금개혁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려면 공화당의 협력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권력 구조를 반영하듯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엘리제궁에서 주재한 국가재건위원회 회의에서 12월 15일 발표하려고 했던 연금개혁안을 내년 1월 10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몇몇 야당이 대표를 새로 선출했고, 일부 노동조합에서 지도부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들과 개혁안에 담길 주요 내용을 논의할 시간을 벌겠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정부는 내년 1분기 중 하원에서 연금개혁법안 논의를 마치고 여름에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노조와 좌파 야당이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연금을 받는 법정 최소 연령을 2031년까지 65세로 늘리고 싶다면서도 노조와 협의를 거쳐 일부 조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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