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데스메탈 가수처럼 7옥타브 넘나드는 소리 낸다"
덴마크 연구팀 "독특한 후두 구조 이용해 저주파~고주파 생성"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박쥐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저음부터 사람 귀에 안 들리는 고주파까지 7옥타브에 걸친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이는 데스메탈 가수처럼 성대를 자유자재로 쓰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4일(현지시간) 미국 공공라디오방송 NPR에 따르면 코엔 엘리만스 서던덴마크대 교수팀이 박쥐가 성대주름과 가성대주름(false vocal folds)을 모두 활용하는 독특한 성대 구조를 가진 덕분에 저음부터 고음까지 자유롭게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저주파 소리를 낼 때엔 데스메탈 가수들이 으르렁거리는 낮은음을 낼 때와 같은 기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다우벤토 박쥐 5마리에서 채취한 후두를 이용한 실험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국제학술지 '플로스 생물학'(PLoS Biology) 최신호에 발표했다.
박쥐는 1㎐의 저주파부터 120㎑의 고주파까지 낼 수 있다. 저주파로는 다른 박쥐들과 소통하고 고주파는 비행경로 탐색, 먹이 찾기 등 '반향 위치 측정'(echolocation)에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만스 교수는 "인간은 보통 3~4옥타브, 일부 뛰어난 가수는 4~5옥타브 소리를 내는 데 박쥐는 7옥타브를 낼 수 있다"며 "박쥐들이 어떻게 이렇게 넓은 음역을 내는지 밝혀내기 위해 이 연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초당 최대 25만 프레임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초고속 비디오를 이용해 박쥐가 소리를 낼 때와 같은 공기 흐름을 만들고 박쥐에서 채취한 후두의 성대가 어떻게 진동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박쥐들은 기본적으로 성대에서 확장돼 나온 매우 얇은 막인 성대주름(Vocal folds)을 사용해 반향 위치 측정용 고주파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엘리만스 교수는 "이 얇은 막 바로 위에서 또 하나의 주름을 발견했다"며 "이 주름은 아주 쉽게 진동할 수 있고, 진동할 때 매우 낮은 주파수로 진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에게도 이런 주름이 있지만 보통 말할 때엔 아무 기능도 하지 않아 가성대주름(False vocal folds)이라고 부른다며, 데스메탈 같은 극단적 음역의 노래를 할 때 이 주름이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데스메탈은 폭력·악마 이미지를 상징하는 빠른 템포의 메탈록 음악으로, 야생동물의 으르렁거림을 연상케 하는 낮은음의 보컬과 손바닥을 활용해 기타를 연주하는 팜뮤팅(Palm Muting) 등이 특징이다.
엘리만스 교수는 가성대주름이 성대주름 쪽으로 약간 내려가면 두 막이 더 무거워지고 느슨해지면서 함께 낮은 주파수를 낸다며 그 진동이 매우 불규칙해 거친 특성의 데스메탈 노래와 유사한 소리가 된다고 말했다.
데스메탈 밴드 '오비추어리'(Obituary)의 리드싱어 존 타디는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는 데에는 희생이 따른다며 "그 소리는 복부에서 가슴, 다리, 목까지 온몸을 사용해 내는 소리"라고 말했다.
데스메탈 밴드 '케이트그리퍼'(Gatecrepper)의 리드싱어 체이스 메이슨도 "자신을 학대하듯 성대가 찢어지는 느낌, 목 뒤에서 피가 나는 느낌이 들어야 더 좋은 소리가 난다는 생각이 든다"며 "고통은 데스메탈 보컬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엘리만스 교수는 "박쥐는 독특한 후두 구조로 저주파부터 고주파까지 7옥타브의 소리를 낼 수 있음이 확인됐다"며 "대부분 포유류가 3~4옥타브, 사람은 3옥타브 정도 소리를 내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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