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 中 대륙, '3분 묵념'으로 제3대 지도자 장쩌민과 작별(종합2보)
베이징서 추도대회 엄수…시진핑 "국가부강·인민행복에 일생 바쳐"
전국적 애도기간 종료…방역 완화 속 '백지시위' 재개 여부 주목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지난달 30일 사망한 고(故)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이 14억 중국인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받았다.
6일 중국 공산당 중앙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 중앙군사위원회 공동 주관으로 오전 10시(현지시간)부터 약 1시간 동안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당·정·군 간부 등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 전 주석 추도대회가 거행됐다.
국장(國葬) 격인 추도대회 개시와 함께 중국 전역에서 시민들이 3분간 묵념했고, 동시에 전국에서 경적과 방공 경보가 울렸다. 묵념이 진행되는 3분 동안 중국에서 주식과 선물, 외환 등 모든 금융시장이 거래를 중단했다.
하지만 전 국민 묵념 및 경적 울리기 공지가 사전에 나갔음에도 이날 오전 10시께 베이징 중심을 통과하는 창안(長安)대로에는 경적 울리기에 동참하는 차량을 찾기 어려웠다.
관(官) 주도로 최고 예우의 장례 절차가 진행됐지만 1997년 덩샤오핑 사망 때와 같은 민관을 아우르는 거국적 애도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45분여 읽어내려간 추도사에서 "우리가 장쩌민 동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그가 일평생 심혈과 정력을 중국 인민에게 바쳤기 때문이며, 민족 독립, 인민 해방을 쟁취하고 국가 부강, 인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평생 분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어 톈안먼 유혈진압 직후인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중국이 서방의 제재를 받았던 시기를 거론하면서, 당시 고인이 최고 지도자로서 개혁개방을 견지하고 이데올로기 사업을 전면적으로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로 "당과 인민은 개혁과 발전의 큰 국면을 성공적으로 안정시켰고 우리나라 발전의 견실한 기초를 마련했다"고 시 주석은 강조했다.
시 주석은 또 "개혁개방은 당대 중국의 전도와 운명을 결정한 한 수 였다"고 강조하는 한편 "전체 인민의 공동부유가 더욱 더 명확하고 실질적인 진전을 거두도록 해야 한다"며 개혁개방 시기의 빈부격차 등 문제점을 극복하겠다는 자신의 목표도 부각했다.
시 주석은 또 "장쩌민 동지의 서거는 우리 당과 우리 군, 우리 나라 각 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라며 "당 중앙은 전 당과 전 군과 전국 민족 인민에게 비통함을 힘으로 바꿔 장쩌민 동지의 유지를 계승하고 실제 행동으로 애도의 마음을 표하고,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길에서 끊임없이 당과 국가사업 발전의 새 장을 쓸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추도사 낭독에 이어 참석자들은 영정 사진을 향해 3차례 허리를 굽혀 절하며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중국 국내 전역과 해외의 중국 대사관·영사관 등 재외공관 및 기타 재외기관은 이날 조기(반기)를 게양했다.
공공 오락 활동이 하루 동안 금지됨에 따라 유니버설 베이징 리조트는 하루 폐쇄됐고, 텐센트·미호요 등 중국 주요 게임 업체들도 6일 0시부터 24시간 동안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중단키로 했다. 중국 농구연맹은 예정돼 있던 3경기를 연기했다.
관영 중앙TV(CCTV)로 추도대회가 생중계된 가운데, 시진핑 주석이 주임인 장례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단위별로 단체 시청을 했다.
네티즌들은 장 전 주석 캐리커처와 추모 글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며 고인을 애도했다.
'장 할아버지, 편히 쉬세요', '영원히 당신을 마음에 새기겠습니다'와 같은 추모글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고인의 고향인 장쑤성 양저우의 장 전 주석 고택 앞에도 이날 많은 시민이 모여 고인을 기리며 헌화했다.
이에 앞서 전날 시진핑 주석을 포함한 현직 최고지도부 인사 등이 참가한 가운데 베이징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원에서 송별 의식(영결식)이 엄수됐고, 이어 장 전 주석 시신은 화장됐다.
당초 장례위원회는 송별 의식을 개최하지 않는다고 1일 발표했는데, 이는 1976년 마오쩌둥 사망 때처럼 수일에 걸쳐 일반인들 참여하에 거행하는 송별 의식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던 것으로 해석된다고 홍콩 명보는 전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중국 국가주석을 역임한 장 전 주석은 지난 11월 30일 백혈병 등으로 인해 상하이에서 치료를 받다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라는 격동을 거쳐 최고 지도자에 오른 고인은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을 이은 중국의 제3세대 최고지도자로 역사에 남았다.
고인은 최고지도자로 재임하는 동안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과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숨긴 채 실력을 키움)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미국 등 서방과의 원만한 관계 속에 중국의 비약적 경제 성장을 일궜다.
고인의 대표 사상은 '3개 대표 이론'이다. 전통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척받는 자본가 계급을 끌어안는 것이 골자다. 이는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공산당 당헌(黨章)에 '3개 대표 중요 사상'으로 정식 삽입됐다.
한편, 전날 송별 의식에 참석했던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이날 추도대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후 전 주석은 지난 10월 당 대회 폐막식 때 퇴장당한 이후 처음으로 전날 공개 행사에 참석했다.
아울러, 장 전 주석 장례 절차가 마무리됨에 따라 지난달 말 중국 여러 지역에서 타올랐던 고강도 방역 반대 시위(일명 '백지 시위')의 재개 여부도 주목된다. 최근 중국 정부가 잇달아 내놓고 있는 방역 완화 조치와 정부의 시위 강경 대응 기조 속에 백지 시위가 재개될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될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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