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시위에 놀란 중국…갑작스러운 방역완화에 '우왕좌왕'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코로나19 발생 이후 3년 가까이 강력한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던 중국이 방역 정책에 항의하는 '백지 시위' 이후 급격히 정책을 완화하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가 주말과 휴일을 기점으로 유전자증폭(PCR) 검사 의무화 조치를 완화하는가 하면 일부 지역에서는 감염자들에 대한 자가격리를 허용하고 있다.
경제수도 상하이시는 4일 오후 위챗 공식 계정을 통해 5일부터 지하철, 버스, 여객선 등을 이용할 때 PCR 검사 음성 증명서가 필요 없다고 밝혔다.
또 시내 공원과 유원지 등 공공장소에 출입할 때도 음성 증명서를 검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상하이시는 "앞으로도 국가 정책과 감염병 상황에 따라 지속해서 정책의 최적화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전국에서 가장 엄격한 방역태세를 유지하던 베이징시도 5일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PCR 검사 음성 결과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난 2일 발표했다.
그동안 베이징에서는 48시간 이내에 받은 PCR 음성 증명서가 없으면 버스나 지하철 이용은 물론 동네 슈퍼마켓조차 갈 수 없었다.
광둥성 선전시도 버스, 지하철, 택시 등 시내 교통수단 이용 승객의 PCR 검사 결과를 확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선전시는 또 실외 공원 입장객에게도 같은 조처를 하기로 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청두, 톈진, 다롄, 선전 등 최소 10개 도시에서 대중교통 이용 시 필요했던 PCR 검사 음성 결과 제시 의무가 폐지됐다고 보도했다.
PCR 검사는 모든 주민에게 1∼3일마다 한 번씩 검사를 받도록 강제해 숨어있는 감염자를 찾아내 빠르게 격리함으로써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는 중국 제로 코로나 정책의 핵심이다.
PCR 검사를 강제하지 않으면 감염자를 가려낼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이와 함께 감염자가 한 명이라도 발생하면 수천 명이 거주하는 주거 단지 전체를 봉쇄하던 정책에서 아파트 라인별로 봉쇄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데 이어 주말과 휴일을 기해 감염자의 주거지만 봉쇄하는 방식으로 급선회한 지역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감염자를 집단격리시설인 '팡창(方艙)의원'으로 강제 이송하는 대신 자가격리를 허용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팡창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보다 팡창에 가는 게 더 무섭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두려움의 대명사로 알려진 곳이다.
감염자가 아닌 밀접접촉자로 분류되기만 해도 쏜살같이 격리하고 봉쇄하던 2∼3주 전과는 사뭇 다른 방역 조치에 방역요원은 물론 시민들도 어리둥절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최근 자신의 검체가 담긴 통에서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통보를 받은 한 중국인은 당국의 대응에 분노를 터뜨렸다.
중국은 10명의 검체를 한 개의 시험관에 혼합 채취해 검사한 뒤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오면 개별 검사해 감염자를 가려낸다.
그는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됐을 수도 있는데 담당자는 집에 있으라고만 하고 사흘 동안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며 "담당자에게 강하게 항의하니 그제야 자가 진단키트를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그는 자가 진단에서 음성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담당자에게 알린 뒤에야 격리 해제 통보를 받았다.
베이징의 한 주거단지에서 방역 요원으로 활동하는 중국인은 연합뉴스에 "방역지침이 바뀌다 보니 개별 사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당황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며 "그럴 때는 주민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뒤 당국에 문의하지만 답변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 20대 중국인 여성은 "과학 방역을 강조하더니 코로나19 정책이 1주일 사이에 급격히 탕핑(平·드러눕는다는 뜻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버리면서 아예 더는 노력하지 않는 태도)으로 바뀐 것 같다"며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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