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위기'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사임 안한다"
외화 뭉칫돈 의혹 의회 조사 보고서 나오자 한때 사임 고려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사퇴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3일(현지시간) 대통령실 대변인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2월 당시 라마포사 대통령이 개인 농장의 소파 밑에 숨겨둔 현금 수백만 달러를 도난당하고도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과 관련, 지난달 30일 국회에 제출된 독립 패널 조사 보고서는 "대통령 선서와 달리 법과 헌법을 위반했을 수 있다"면서 국회 탄핵 표결로 갈 수 있는 길을 텄다.
그러나 빈센트 마궤니아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은 결함이 있는 보고서에 따라 사임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법정 다툼으로 갈 것임을 시사했다. 마궤니아 대변인은 또 당 대표를 겸한 라마포사 대통령이 오는 16일 당 대표 재선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당규상 부패 혐의로 기소될 경우 당직에서 일단 물러나야 하나 의혹을 조사 중인 경찰은 아직 라마포사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았다.
마궤니아 대변인은 ANC 지부들에서 분명하게 그의 재선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보낸 점을 이번 사임 불가 결정에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지난달 당 대표 재선에 관해 지부들의 압도적 지지를 확보한 바 있다.
의회 자문을 위한 3인 독립 패널은 지난 9월 구성돼 라마포사 대통령이 헌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는지 여부와 그에 관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를 조사해왔다. 헌법재판소장 출신도 이 패널에 참여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앞서 패널에 제출한 138쪽 분량의 소명서에서 자신의 농장에서 도둑맞은 돈은 의혹처럼 400만 달러(약 52억 원) 이상이 아니라 58만 달러(약 7억6천만 원)라고 말했다.
또 문제의 돈은 지난 2019년 말 수단 국적의 사업가 무스타파 모하메드 이브라힘 하짐에게 판 버팔로 대금이라고 해명했다.
이 돈은 원래 농장 관리인이 금고에 보관하다가 대통령 주거지가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 보조 침실의 소파로 옮긴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도난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는 이 문제를 경찰 출신 경호팀장에게 알렸다면서 자신은 관련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회 패널은 이브라힘 하짐의 신원이 확인이 안 돼 문제의 외화 뭉칫돈이 버팔로 판매 대금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70세인 라마포사 대통령은 당 대표에 재선되고 ANC가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 자동으로 대통령에 재선된다.
ANC는 4일 자체 긴급 회의에 이어 5일 전국 집행위원회 회의를 열고 라마포사 대통령의 진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국회는 6일 이번 패널 보고서를 채택할지 여부에 대한 표결을 할 예정이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보고서 공개 후 일부 장관이 사임 요구를 하자 한때 사임까지 고려했었다. 이에 시장이 요동치면서 랜드화 가치는 지난 5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기도 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이 사임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ANC가 지지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 한 실제로 탄핵당할 가능성은 적다. ANC는 전체 의석의 60%에 가까운 230석을 확보한 가운데 탄핵이 가결되려면 재적 의원 수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억만장자인 라마포사 대통령은 지난 6월 북동부 지역에 있는 개인 농장 팔라팔라에서 수백만 달러의 외화 뭉칫돈을 도난당하고도 이를 함구했다는 폭로에 직면했다. 폭로를 터뜨린 아서 프레이저 전 정보기관 수장은 문제의 외화가 라마포사 대통령의 '검은돈'이기 때문에 나중에 대통령 경호팀이 도둑들을 몰래 체포하고도 뇌물을 줘 도난 사실을 비밀에 부치려 했다고 주장했다.
실정법상 이 정도 액수를 신고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보관한 것은 외국환관리법을 위반했다는 문제도 제기되면서 그의 명성에 흠집이 가고 대통령 재선 가도에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부패 혐의로 물러난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지난 2018년 반부패 공약을 내세우며 대통령이 됐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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