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백지시위' 속 장쩌민 전 주석 사망…추모 이후 민심 향방은
"통제 강화로 시위 위축" vs "추모 분위기 속 시위 확산"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중국에서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이후 33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적 저항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해 성난 민심이 어떻게 흘러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적 그룹'으로 분류되는 상하이방(上海幇)의 '태두' 장쩌민 전 주석의 사망은 이른바 '백지시위'에 돌발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1989년 톈안먼 시위는 직전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에서 촉발됐다는 점에서 장 전 주석의 장례는 미묘한 시기에 치러지게 된다.
일단 중국은 장 전 주석의 별세 이튿날인 1일 추모 분위기에 빠져든 상태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넘쳤고, 중국 정치의 상징 톈안먼 광장에는 조기가 내걸렸다.
추모 이후의 민심의 향방과 관련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통제 강화로 한동안 시위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과 추모 분위기를 활용해 시위가 확산할 수 있다는 엇갈린 예상이 나온다.
◇ "당국의 통제 강화로 시위 분위기 위축될 것"
장 전 주석의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당국이 한층 더 사회 통제를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고강도 방역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는 엄두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실제 시위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던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장 전 주석을 추모하는 글들이 대거 올라오며 대화방 분위기가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따른 분노에서 추모로 전환된 모습이다.
사정·공안 분야 사령탑인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법률위원회가 시위대를 적대세력으로 묘사하며 "질서를 혼란하게 하는 위법 및 범죄 행위를 결연히 타격해 사회 안정을 수호할 것"이라고 밝힌 점도 시위가 계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중국 공안당국은 전날 오후에도 량마차오루, 르탄공원, 쓰퉁차오 등 베이징 도심의 시위 예상 지역에 경찰력을 대거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곳곳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빠르고 확산한다는 사실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통제할 명분을 준다는 설명도 있다.
아울러 장 전 주석의 영향력이 중국 정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점도 시위가 확산하기 어렵다는 전망의 근거로 제시된다.
장 전 주석은 한때 자신의 계열로 분류되는 상하이방 인사들을 최고 지도부에 포진시키며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시 주석 집권 이후 대거 부패 혐의로 낙마하면서 상하이방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시사평론가 류루이사오는 홍콩 명보에 "장쩌민 전 주석 퇴임 10년 후 시진핑 주석이 집권했고 시 주석 집권 3기가 됐다"며 "장 전 주석의 사망은 중국 국내 시국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불확실성 높아져…전국적 항의 동력 높일 것"
반면 추모 분위기를 활용해 시위가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국가 최고 지도자였던 장 전 주석을 추모한다는 명분으로 집결해 시위를 벌일 경우 효과와 영향력이 높아져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당국의 시위 장소 사전 차단에 맞서기 위해 한 장소에 모이는 방법 대신 같은 시간 높은 곳에서 이번 시위의 상징인 백지(흰 종이)를 던지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자는 등 다양한 제안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당국은 전날 오후부터 도심의 육교를 비롯한 고층 건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장 전 주석 사망은 우리에게 정당하게 모일 기회를 준 것"이라며 "당의 중요한 지도자에 대한 추모조차 못 하게 한다면 시 주석의 위상은 더욱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법치를 강조하지만, 당 중앙의 많은 지도자는 인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장 전 주석에 대한 추모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전 주석 재임 시기 고속 성장을 유지했다는 점도 시위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치학자 우창은 홍콩 명보와의 인터뷰에서 "장 전 주석의 사망은 현 정세에서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며 "특히 학생과 중산층이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전국적으로 시위의 동력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번 주말이 고비…"장례 후 다시 불붙을 것"
전문가들은 이번 주말이 시위 확산 여부를 가르는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백지 시위가 지난달 26∼27일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베이징과 상하이 등에서 진행됐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첫 시위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지만, 당국의 강력한 차단 등의 영향으로 소강상태다.
일부 네티즌들은 주말을 이용해 자신들의 의지를 당국에 전달해야 한다며 강경한 반응을 보인다.
여기에 미국과 한국 등에서 유학 중인 중국인들이 시 주석 퇴진을 요구하는 연대 집회를 벌이고, 미국·영국·독일·캐나다 정부가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도 시위대에게는 희망으로 작동한다.
이런 가운데 광저우와 충칭 등 대도시들이 속속 방역 완화에 나서고 있어서 주목된다. 지역 전체를 봉쇄하는 게 아니라 감염자가 발생한 아파트 동(棟) 단위로 봉쇄하고, 감염 위험이 낮은 곳의 인구 이동을 허용하고 있다.
봉쇄 장기화에 폭발한 민심을 달래려는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고령층 백신 추가 접종에 속도를 내는 등 일상회복을 위한 사전 조치들이 진행된다는 관측도 있어 시위의 명분이 약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연합뉴스에 "장 전 주석에 대한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백지 시위가 어떠한 양상을 보일지 예상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장례 후에도 방역 정책의 변화가 없다면 시민들의 시위는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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