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사우디 왕세자, 면책권 노리고 美 사법체계 기만"
'카슈끄지 사건' 변호인 "재판부, 미 정부의 면책권 인정 거부하라" 촉구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면책권을 받기 위해 미국 사법 체계를 기만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30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카슈끄지의 약혼녀 하티제 젠기즈의 변호인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2018년 벌어진 카슈끄지 암살을 지시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소송에서 면책특권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사법 체계 '조종'(manipulate)이라는 유례없고, 뻔뻔한 시도에 연루됐다는 주장을 담은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달 카슈끄지 암살 사건과 관련한 소송에서 무함마드 왕세자의 면책특권을 인정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키스 하퍼 변호사는 가디언이 입수한 10쪽 분량의 의견서에서 무함마드 왕세자의 면책특권을 부여한 미국 정부의 결정을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존 베이츠 워싱턴DC 연방지방법 판사에게 미 정부의 결정을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베이츠 판사는 무함마드 왕세자를 상대로 카슈끄지의 약혼녀 등이 낸 민사소송의 주임 판사다.
그는 지난 6월 미국 정부에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정부수반으로서의 면책권'을 적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미 법무부는 이에 "피고인이 외국 정부의 현직 수반으로서, 국가 원수에게 부여되는 면책 특권이 적용된다는 것이 행정부의 판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우디의 실권자로 통하는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 총리로서 미국 법원에서 면책 특권을 갖는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지난 9월 통상 국왕이 맡는 사우디 정부 수반인 총리로 임명됐다.
상당수 인권단체는 이는 미국 법원이 카슈끄지 사건에서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사우디 정부의 획책으로 보고 있다.
하퍼 변호사는 타국 지도자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의 면책특권을 갖는지에 대한 정부의 판단에 법관들이 따르는 것이 관례이지만, 사우디가 국제법 역사상 전례가 없는 법적 조작에 관여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관례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판부는 따라서 미국 거주민이었던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을 지시한 무함마드 빈 살만(MBS)을 보호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의견을 제시할 권리가 있지만, MBS의 뻔뻔한 시도에 대한 정부의 결정에 재판부가 반드시 응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역사상 다른 어떤 사건에서도 피고인이 면책특권을 부여받을 유일한 목적으로 그렇게 높은 직위에 임명된 사례가 없을 뿐 아니라,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국제적 예법에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우디 출신으로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로 일했던 카슈끄지는 무함마드 왕세자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써 사우디 왕실에 '눈엣가시'였다.
그는 2018년 10월 혼인신고를 위해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았다가 사우디 정보요원에 의해 살해됐다.
카슈끄지의 약혼녀 등은 암살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왕세자 등을 상대로 정신적·금전적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2020년 미국 법원에 제기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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