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으려 금리 올렸지만…자금경색·경기침체로 '베이비스텝'

입력 2022-11-24 10:00
수정 2022-11-24 10:16
물가 잡으려 금리 올렸지만…자금경색·경기침체로 '베이비스텝'

"긴축속도 늦춰야" 미국 연준 태도 변화도 빅 스텝 막아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박대한 민선희 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24일 기준금리를 3.00%에서 3.25%로 0.25%포인트(p) 더 높였다.

여섯 차례 연속(4·5·7·8·10·11월) 인상은 한은 사상 처음이다.

5%대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1%포인트(p)에 이르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 탓에 통화 긴축 기조는 이어갔지만, 원/달러 환율이 안정된데다 채권 등 자금시장 경색 위험도 남아 있어 10월에 이은 연속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까지 밟기에는 부담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 사상 첫 6연속 인상 불가피…5%대 물가·한미 금리 역전 등 압박

금통위가 이날 다시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 수준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뚜렷하게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월 소비자물가지수(109.21)는 작년 같은 달보다 5.7% 올랐다. 상승률이 7월(6.3%) 정점 이후 8월(5.7%), 9월(5.6%) 떨어지다가 석 달 만에 다시 높아졌다.

앞으로 1년의 물가 상승률 전망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일반인)은 11월 4.2%로 10월(4.3%)보다 낮아졌지만, 7월 역대 최고 기록(4.7%) 이후 다섯 달 연속 4%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금리 인상 등으로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를 억누르지 않으면, 경제 주체들이 오른 물가 눈높이에 맞춰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 임금 등을 줄줄이 인상해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빅 스텝 직후 "5% 이상의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면 기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우리나라 경제에 나쁜 영향을 주는 만큼 물가 중심의 경제정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 한미 금리차 0.75%p로 줄어…내달 최소 1.25%p까지 다시 확대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이례적 4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으로 최대 1.00%p까지 벌어진 한국(3.00%)과 미국(3.75∼4.00%)의 기준금리 차이도 인상의 주요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이날 금통위의 0.25%포인트 인상으로 미국과의 격차는 일단 0.75%포인트로 좁혀졌다.

하지만 다음 달 13∼14일(현지시간) 연준이 최소 빅 스텝만 밟아도 격차는 1.25%포인트로 다시 확대될 전망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물가만 놓고 본다면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이 크다"며 "더구나 연준이 12월에 또 기준금리를 올리면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 우려까지 있다"고 설명했다.



◇ 연속 빅 스텝은 피해…미국 긴축 조절·환율안정·자금경색·경기충격 고려

다만 금리 인상 폭의 경우 10월과 같은 0.50%p가 아니라 0.25%p에 그쳤다.

최근 1,300원대 초중반까지 떨어진 원/달러 환율, 아직 불씨가 남아있는 채권시장 등의 자금·신용 경색 위험,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가능성, 갈수록 뚜렷해지는 경기 침체가 연속 빅 스텝의 명분을 크게 줄였다.

이날 금통위 회의에 앞서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예상하며 "최근 환율은 안정화 단계에 있다. 과거 원/달러 환율은 1,050∼1,250원 범위에서 움직였고, 1,300∼1,400원대 환율은 국가 부도 사태 등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들다. 따라서 점진적으로 적정 환율 수준인 1,250원 밑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10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7.7%) 발표 이후 시장에서는 미국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지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이에 따라 12월 연준의 금리 인상 폭이나 최종 금리 상단 수준, 인하로의 전환 시기 등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미국의 통화 긴축 강도가 약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고, 한은도 이런 분위기를 고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총재도 지난 11일 '한은·한국경제학회 국제컨퍼런스' 개회사에서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과 환율이 비교적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도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새벽 공개된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11월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달 자이언트 스텝 결정 당시 다수의 FOMC 위원들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적절하다는 데 동의했다. 다음 달 13∼14일(현지시간)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보다는 빅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자금시장의 불안도 금통위 회의 과정에서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의 근거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기영 금통위원도 앞서 11일 금요 강좌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은 금융 안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

너무 빠른 금리 인상이 소비·투자를 위축시켜 경기 하강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한은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함께 내수 경기도 빠르게 동력을 잃어가면서 내년에 본격적으로 경기 침체에 진입할 것"이라며 "한은으로서는 빅 스텝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미 지난달 12일 빅 스텝 결정 당시에도 금통위원 2명(주상영·신성환)은 경기 침체 가능성 등을 들어 '베이비 스텝'에 표를 던진 바 있다.

둘 중 한 위원은 "기조적 고인플레이션 흐름에 대응해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통화정책의 파급 시차를 고려할 때 최근의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파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중후반 국내 경제 성장세가 크게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shk999@yna.co.kr, pdhis959@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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