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장비로 억대 원정도박, 코인 발행수익 해외 빼돌려 탈세
국세청, 외화자금 유출한 역외탈세자 53명 세무조사 착수
코로나 특수 누린 다국적기업, 국내 자회사 이익 해외로 몰아줘
(세종=연합뉴스) 차지연 기자 = A사 사주는 직원과 함께 해외 거래처에 출장을 가 용역업무를 수행했으나 세금을 피하려고 용역비는 외화 현금으로 받았다.
사주는 회사 법인카드를 현지 카지노 호텔에서 긁은 뒤 다시 이를 돌려받는 수법으로도 돈을 챙겼다.
4년간 64회에 걸쳐 이렇게 빼돌린 돈으로 사주는 해외 현지에서 3억원 이상의 원정도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회사 B는 코인을 개발한 뒤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이 코인을 발행했다. 발행 후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챙긴 이익도 페이퍼컴퍼니가 가져가도록 해 국내에 내야 하는 세금을 피했다.
B사 사주는 페이퍼컴퍼니에서 차명 계정으로 관리하던 코인을 거래소에서 팔고 그 대금을 자신의 국내 계좌로 빼돌리기도 했다.
의류업을 하는 국내회사 C도 자신들이 개발한 상표권을 사주가 소유한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등록하고 사용료를 지불했다.
C사는 상표권 관련 광고비까지 부담했다. 자신들이 만든 상표권으로 수익을 올리기는커녕, 사용료와 광고비까지 부담해가며 사주의 이익을 늘려주고 수백억원의 세금은 회피했다.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인 국내회사 D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자 국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가격보다 더 싸게 해외 관계사(해외 모회사가 지배하는 회사)에 제품을 팔아 해외 관계사가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했다.
다른 해외 관계사에는 수천억원대 배당을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관계사보다 배당소득 원천징수 세율이 더 낮은 나라에 있는 해외 모회사에 배당한 것처럼 속여 세금을 줄이는 '꼼수'도 썼다.
국내회사 E는 제품은 해외 관계사에서 수입하고 상표권 사용료는 해외 모회사에 지급해왔으나,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이 크게 늘자 자신들이 모회사의 단순 판매업자인 것처럼 눈속임하는 사업 개편에 나섰다.
모회사에 상표권 사용료를 내지 않으면 원천징수 세금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그러면서 해외 관계사에서 수입하는 제품에는 더 비싼 가격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E사가 국내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이제 해외 모회사와 해외 관계사가 챙길 수 있도록 설계하면서 E사의 영업이익은 10%포인트 넘게 줄었다.
E사는 상표권 사용료 원천징수 세금 수천억원을 전혀 내지 않은 것은 물론, 영업이익 급감으로 법인세도 확 줄였다.
국세청은 이처럼 국내 자금이나 소득을 해외로 부당하게 이전하거나 국내로 들어와야 할 소득을 해외에서 빼돌린 역외탈세자 53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중 해외 투자를 핑계로 자금을 부당하게 해외에 보내거나 해외에서 진행한 용역의 매출을 신고하지 않는 방식으로 탈세한 혐의자가 24명이다.
내국법인의 상표권 등 무형자산을 해외로 '꼼수 이전'하거나 국내 원천기술을 해외에 부당하게 무상 제공한 탈세 혐의자는 16명 포함됐다.
'코로나 특수'로 얻은 국내 자회사 이익을 부당하게 해외로 보내거나 사업구조를 인위적으로 바꿔 탈세한 다국적기업 13곳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세청은 원/달러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기업들이 환위험, 물류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역외탈세자들이 외화자금을 빼돌려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그동안에는 비밀 계좌나 미신고 소득 등을 통해 은밀하게 이뤄지던 역외탈세가 이제는 정상 거래인 것처럼 사업 구조를 위장하고 교묘하게 세금을 피하는 방식으로 바뀐 측면이 있다고도 분석했다.
국세청은 2019∼2021년 역외탈세 조사로 4조149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번 조사에서 외환 송금내역, 수출입 통관자료, 해외투자 명세를 철저히 검증하고 세법과 조세조약에 따라 법인 사주를 비롯해 관련인들까지 포렌식, 금융거래조사, 과세당국 간 정보교환 등을 통해 끝까지 추적해 과세하겠다"며 "조세포탈 혐의가 확인되면 범칙조사를 통해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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